목요칼럼-양치기 소년이 많은 세상


동문기고 목요칼럼-양치기 소년이 많은 세상

작성일 2007-09-23
안호원의 목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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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이 많은 세상 
 안호원 news@pharmstoday.com 
 
어떤 사람이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물론 지게 오른쪽과 왼쪽에는 각각 물통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왼쪽의 물통은 작은 구멍이 뚫렸다.

항상 양쪽 물통에 물을 가득히 채워서 출발하지만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왼쪽 물통에는 물이 반쯤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오른쪽 물통은 가득 차 있다.

왼쪽 물통은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하루는 주인에게 자기 때문에 주인이 두 번 일을 하는 것 같아 죄송하다며 자기를 버리고 새 물통을 쓰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주인이 대답하기를 "나도 네가 새는 것을 안다. 그것을 알면서도 너를 바꾸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지나온 길 양쪽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른쪽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붉은 땅이지만 네가 지나간 왼쪽 길은 아름다운 꽃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비록 구멍 뚫린 물통이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 생명을 즐긴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완벽함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작은 구멍이 뚫린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자신을 비하하며 낙담할 때도 있다.

이 세상이 삭막하고, 차가운 것은 구멍 난 인생 때문이 아니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완벽해지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자연, 이 세상을 황무지로 만드는, 똑똑한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요즘 대선 예비주자들을 보면서 더욱 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오른쪽 물통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 같이 이 사회가 가뭄에 메마른 땅처럼 삭막해 지는 것 같다.

대선 주자들이 토론을 하는 것을 보면 어찌 그리 아는 게 많고 완벽한 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너무나 똑똑하고 완벽해 차라리 정(情)이 떨어질 정도의 기분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인지 모른다.

그들뿐만 아니라 지식인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완벽해지려고 하면서 위선으로 자신을 가리려고만 한다.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 하나 후에는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거짓 중에 가장 나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측은함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그런 필자도 자신의 일상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 너무도 많다.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면 거짓말 중독에 걸리게 되고 급기야는 '공상허언증'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것이 전문가의 말이다.

특히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이 입장이 난처할 때 애매한 말로 분위기를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같은 애매한 말이 바로 거짓말의 시작인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하도 거짓이 난무하다보니 모든 것이 노출되는 투명사회가 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는 물론, 종교계까지도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존재할 수 없을 만큼 투명성을 요구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같은 투명성이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으로 인해 변질되고 있다.

변질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목적이 '공동체'에 있지 않고 '자아' 중심으로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가족화 되면서 자기틀 안에서 자기 잣대로 보는 착각(착시)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늑대와 양치기 소년'처럼 진실할 때 진실하지 못하면 진실이 필요할 때 그 진실은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성실함과 의로움도 이와 마찬가지다. 의로워야 할 때 의롭지 못하면 다시 의로워지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정치인은 물론이지만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양치기 소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번번이 속으면서 달려나와 표를 찍어주는 우매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권좌에 앉아 세인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숱한 인물들이 하나둘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총리라는 사람이 황제골프로 도중 하차했다. 또 장관 출신들이 줄줄이 엮여 낙마했고, 뇌물비리에 연루된 청와대 인사들로 인해 대통령을 난도질하기도 했다.

더구나 '모함이다' '험담을 한다'면서 한결같이 진실을 밝히겠다고 당당한 모습으로 검찰청에 들어갔던 대기업 총수나 고위 관료출신들이 나올 때는 모두가 고개를 떨어뜨린 채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다.

파헤쳐 보면 모두 거짓된 자들뿐인데 한결같이 초라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세상 사는 게 슬퍼진다.

특히 요즘들어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은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산다는 것이다.

꽃도 떨어질 때를 알아 그 때에 이르러 스스로가 떨어지는데 똑똑함을 자처하고 완벽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가야할 때와 물러날 때를 알고 있지 못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된다.

세상살이가 여유가 없다해도 창 밖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가끔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회상해보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져 보았으면 한다.

자신을 안다면, 적어도 자신이 밑바닥에 구멍이 난 왼쪽 물통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이 세상은 더욱 밝고 맑은 사회가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좋은 이웃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분명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지만 가족들은 나의 탄생을 축복하며 기뻐했으리라.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내게 바람이 있다면 이제 내가 이 세상 하직할 때 내 스스로는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은 미천한 나를 위해 울어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부족한 자임을 알고 모두와 함께 할 때 지금보다 훨씬 더 값진 따사로움과 풍요로운 관계에서 진솔한 사랑이 싹 트리라.

지금의 세상을 보는 하늘은 여전히 슬프기만 한가보다. 이른 새벽까지 잠도 잊은 채 비를 뿌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