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학위와 천문학자


동문기고 김상준-학위와 천문학자

작성일 2007-09-19

[과학칼럼]학위와 천문학자
 
- 김상준 / 경희대교수·우주과학 -

직업 중에 아마추어도 참여할 수 있고, 더욱이 아마추어가 학위도 없이 그 분야에 정정당당히(?) 참여하여 그 분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천문학은 아마추어들이 참여하면서 즐길 수도 있고, 학위 없다고 무시당하지도 않고, 심지어 하늘의 어떤 천체를 발견하면 본인의 이름을 영원히 그 천체에 명명해 주어 명예롭게 해 주는 유일한 분야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은 주로 소형 망원경을 가지고 하늘을 살핀다. 그들의 주요 무대는 혜성관측 분야가 아닌가 한다. 요즘은 자동 하늘탐사 망원경들의 등장으로 예전만은 못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들이 새로운 혜성을 반수 이상 발견하여 발견자의 이름이 영원히 그 혜성의 이름으로 되었다. 또한 천문학은 아마추어건 프로건 간에 ‘돈’은 별로 벌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희귀한 분야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프로 천문학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되는 것과 유사하게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선 수리적 재능과 다년간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일부 특정 분야와는 달리 박사학위를 따는 것이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고 천문학에서 박사학위란 과학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에 불과하다.

-프로의 잣대는 ‘학문적 노력’-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으로 학문적 내공을 쌓고 국제적 수준의 논문들을 많이 발표하여야 학자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문학 분야는 물리학이나 화학분야와 같이 가짜 박사로 행세하기가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 최근 물리학 분야에서 상당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고 어느 분이 매스컴을 통하여 주장을 하여 물리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분석되어 그 진위가 가려진 것과 같이 천문학 분야도 논문 검증이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박사를 따고도 학문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학계에서 쉽게 잊혀질 것이다. 여기서 천문학 분야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역할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아마추어들은 다른 직업을 갖고 천체 관측을 즐길 수 있지만 프로 천문학자들은 물리학자나 화학자와 마찬가지로 뼈를 깎는 학문적 노력을 기울여야 진정한 학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사회는 학벌 위조로 떠들썩하다. 검찰 수사로 가짜 학위를 가진 교수나 학원 강사를 색출한다고 한다. 이러한 가짜 학위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옛날 과거제도에서 비롯된 입시위주의 전통적인 교육열과 출세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절대 빈민국가에서 이만큼 경제성장을 해온 바탕에는 이러한 국민적 교육열이 많은 역할을 한 반면, 한편으로 학벌 위조 같은 약간의 부작용은 아마도 필연적이었는지 모른다. 또한 이러한 학벌위주 교육열은 “박사는 무엇이든 잘 안다”는 국민적 편견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자는 사회적 문제성의 크기로 보면 학벌위조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소수의 사람들보다 진짜 박사들이 학문에 힘쓰지 않거나, 전공 이외에 다른 분야에 아마추어적인 개입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사회가 점차 나아지고는 있으나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전문화되어 있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어느 교회 장로님께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필자에게 무엇이든 물으셔서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장로님 사모님이 “콩나물 박사면 콩나물만 알지 부동산에 대해 무엇을 아노” 하면서 장로님께 면박을 주시곤 했다. 사모님께서 오히려 학위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잿밥만 관심두는 학자가 문제-

근래에 우리사회를 흔들고 있는 학위 및 연구에 대한 논란들은 다음과 같은 우리사회가 지닌 기형적 인식과 구조에 의해 더욱 불거진 것 같다. 즉 우리에게도 슈퍼맨이 있어야 한다는 국민적 영웅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기대감, 대학에서조차 많은 자금을 끌고 오면 능력 있는 교수로 인정하는 황금만능의 풍토, 한건 크게 해야 능력 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 때문에 무리하게 자기 능력 이상 과시하려는 학자들, 그러자니 인맥, 학연, 매스컴을 동원하여 결정과정에 공정치 못한 영향을 끼치는 행태, 결과적으로 ‘봉이 김선달’식의 학자가 간혹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기도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박사들은 알려진 만큼 학문에 정진하지 않는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염불을 외우지 않으면 당연히 잿밥에 눈길이 더 가는 법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경향신문 200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