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노동일-닮은 꼴, 로스쿨과 새만금
[시론]닮은 꼴, 로스쿨과 새만금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교수·법대 -
로스쿨은 대한민국 제2의 새만금 사업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던 한 법대 교수가 떠오른다. 농지조성이라는 당초 목적과 달리 새만금 사업이 용도 변경을 통해 산업단지와 관광단지를 조성하고자 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지만 대법원은 사업 강행에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법리적으로 볼 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를 쉽게 말하자면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환경파괴 등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책사업이 강행되는 것은 어쩌면 이런 배짱전술이 통해왔던 전례 때문일 것이다.
-일부大 과잉투자 ‘밀어 붙이기’-
이른바 로스쿨,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을 둘러싼 대학들의 이전투구는 아닌 게 아니라 새만금 사업을 연상케 한다. 진흙 밭 싸움터에는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서울대학교가 선두에 서 있다. 2학기 개강을 코앞에 둔 시기에 15명의 교수 영입 발표로 한껏 기세를 올리고 있다. 교수 영입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시기 운운도 꺼림칙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도 교수진 보강을 위해 비슷한 시점에 옮겨온 교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대학교의 속내다.
최근 서울대는 각 대학별 로스쿨 정원 상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150명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정원 문제는 본격 논의조차 안 된 마당에 서울대가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뭘까. 교수진을 이만큼 확보하고, 시설을 이만큼 갖췄는데 우리 요구대로 정원을 배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는 배짱은 아닐까.
로스쿨의 새만금화는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로스쿨 준비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는 것은 사립학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대학들의 투자금액은 2000억원이 넘고, 로스쿨 유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 투자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전원 장학생’안을 비장의 무기로 준비했다는 상식을 벗어난 얘기까지 들린다. 포성이 멎고 안개가 걷히면 지속가능하지 않은 로스쿨 안(案)에 대해 비판이 쏟아질 것은 불문가지다.
그나마 투자가 결실을 볼지 여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각 대학별 정원에 앞서 결정될 예정인 총 정원은 오랜 세월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법학교수회만 총정원 3200명 의견을 제출했을 뿐 법무부, 법원행정처, 대한변협 등은 ‘내부의견 수렴 중’이다. 총 정원 확정 후 각 대학별 정원 상한, 지역별 정원 확정도 갈 길은 멀다. 변호사시험법 제정 문제도 중요 변수다.
-기득권 싸움된 로스쿨-
변호사 시험 과목과 형식 등은 로스쿨 교육과정에서 핵심적인 고려 요인이다. 변호사 시험에서 일본처럼 정원을 정할지, 미국처럼 절대평가제를 도입할지 여부도 타협이 결코 쉽지 않다. 변호사 단체에서는 정원을 양보하는 대신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 제한을 통한 로스쿨 통제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본과 같은 로스쿨 낭인을 만드는 방안에 대학들이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변호사 시험법도 제정하기 전 교육과정부터 만드는 것은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길을 나서고 보는 격이다.
한국인 특유의 저질러 놓고 보기, 맨땅에 헤딩하기 정신은 때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조선소도 짓지 않은 채 선박수주에 나섰다는 전설도 있다. 이처럼 우격다짐이건 절충이건 로스쿨이 도입되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투자를 해왔는데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문제는 당초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우수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 이념이 ‘기득권 지키기와 빼앗기’ 싸움으로 ‘용도변경’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경향신문 2007-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