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권력누수와 권력과잉


동문기고 임성호-권력누수와 권력과잉

작성일 2007-09-10

[시사풍향계―임성호] 권력누수와 권력과잉 

- 임성호 / 경희대 교수 정치외교학교 -

힘이 빠져가는 막판에 마음을 다잡아 남은 힘을 모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공부하거나 운동할 때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 무리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시험 전날 밤샘하면 멍해져 성적이 더 나빠지고 마라톤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무리하게 하면 부상당하거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정부 권력도 마찬가지다. 임기 말 권력누수가 발생하고 있다고 느낄 때 집권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오기를 부리며 권력을 최대한 행사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지만, 막판의 권력행사가 도를 넘어 권력과잉과 권력남용이 될 경우 해피 엔딩은 불가능해진다. 권력누수 위기감이 클수록 무리수를 둘 위험성이 크고 권력과잉으로 이어져 임기 말 국정을 망가뜨리기 쉽다.

요즘 청와대 관련 각종 뉴스는 권력누수와 권력과잉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의 수뢰 연루설이 터지자, 한 청와대 관계자는 임기 말 권력누수가 없다면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굳이 그렇게 ‘적극적인’ 수사 브리핑을 했을까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권력누수에 대한 예민함이 엿보인다. 정부 내부 문건의 잦은 유출도 권력누수 증후군으로 청와대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측근들을 둘러싼 잇단 비리 의혹은 권력누수에 따른 기강 해이로 청와대의 불안감을 고조시킬 만하다. 이치범 환경부 장관이 이해찬 대선캠프에 가기 위해 갑작스레 사의를 밝힌 것과 이에 대한 청와대의 떨떠름한 반응도 권력누수에 연결시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권력누수 위기감에 따른 반동일까. 임기 말로 올수록 대통령과 그 측근은 더 경직되게 권력을 행사하는 듯하다. 연초의 느닷없는 개헌 제안 소동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남북정상회담 결정이나 정부 브리핑룸 통폐합 및 취재제한 조치는 온갖 비판과 이견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직성과 무모함을 예시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정윤재 의혹이나 변양균 의혹도 한편 권력누수로 인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 권력 과잉과 남용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대통령의 역할은 임기 말에 더 힘들다. 새어나가는 권력에도 불구하고 국정을 원활히 이끄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이럴 때 자칫 무기력하게 포기하거나 반대로 눈과 귀를 닫은 독불장군처럼 무리하는 양 극단 중 하나로 갈 수 있다. 전자도 안 되지만 후자도 안 된다는 점은 특히 오늘날 청와대가 유념해야 한다. 체제 전반이 상당 수준 민주화된 오늘날, 임기 말 권력과잉은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없다. 혼자 좌충우돌하다 유야무야 허무한 끝으로 이어질 뿐이다.

‘한번 보여주고 끝내겠다’는 충동이 문제다. 유종의 미와 막판 과욕은 다르다. 임기 초부터 그래야 하지만 특히 임기 말에는 공식적 입법과정과 행정부 관료라인이라는 제도화된 경로를 통한 개방된 국정수행이 미덕이다. 대통령과 극소수 청와대 측근이 최고결정자의 통치권이라는 방패 뒤에서 일방적으로 국정을 이끌고 비판 여론을 무시한다면 결국 권력누수보다는 권력과잉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되고 만다. 애초 과욕없이 제도화 틀에서 권한을 행사했다면 임기 말이라고 특별히 큰 권력누수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 반동으로 권력과잉이 나타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국민일보 2007-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