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백승현-두꺼비집 놀이’와 정당정치
[특별기고―백승현] ‘두꺼비집 놀이’와 정당정치
- 백승현 (정외72/ 24회) /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 -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결정되면서 이제 관심은 이 후보와 맞서게 될 여권 후보가 누구일지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 되든, 박근혜 전 대표가 했던 만큼 선전(善戰)할 후보가 과연 있을까. 지금까지 지지도 5%대를 넘어본 범여권 후보가 거의 없다는 점에 비춰, 이런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여권 후보들은 정책대결보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김대업식 흠집내기와 인신공격성 싸움걸기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할 게 뻔히 내다보인다.
마치 음식점 이름 바꿔 신장개업하듯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리고 신당을 창당하는 여권의 행태와 속셈에서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민주당의 틀을 깨고 나가면서 ‘새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 장담하고 창당했던 정당이 아니던가. 그런 정당이 3년 9개월 만에 문을 닫았으면, 그에 걸맞은 숙연함과 비장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소멸이 진정한 정치폐업이 아닌 점에서 여권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침몰하는 배 같았던 곳에서 먼저 뛰쳐나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초록동색의 사람들 몇몇이 시민사회단체 대표랍시고 모여 만든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과 흡수통합하며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통합신당의 의원 143명중 138명이 열린우리당 출신인 점, 그리고 새 당의 정강 정책 당규 등이 열린우리당 것과 같은 점에서, 없어진 당과 새로 만든 당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이 무엇인지 도대체 분간하기 힘들다. 정당 구성 인물과 추구이념이 같다면, 그게 같은 정당이지 어찌 다른 당인가.
이름이 다르니 다른 당이다? 국민들 눈엔 그 당이 그 당일 수밖에 없다. 단지 눈속임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자 간판을 바꿔단 얄팍한 속셈밖에 달리 무슨 큰 뜻이 있을까. 그들이 행한 똑같은 일을 기업에서 했다면, 가령 한 회사가 빚을 갚지 않기 위해 그 회사를 폐업하고 그 인원 그대로 경영방침도 그대로인 채 다른 회사를 설립했다면, 그것은 불법적 범법행위에 속한다.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뿐이지, 열린우리당이 국민들에게 지고 있는 정치적 부채는 적지 않다. 그렇기에 열린우리당의 주요 인물들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반성한다” “참회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소한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의 기본원리를 안다면, 그 당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의원직 사퇴든 정계은퇴든 국민 앞에 뭔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정치적으로 책임진 사람이 없다.
도대체 국민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기에, 정치인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민주적 양식이 어떠하기에, 길거리 야바위판 같은 술수를 행하고도 태연한 것인지. 애들 놀이인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연상시키는 점에서, 당 간판을 바꿔 달고도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들은 국민을 두꺼비 수준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 아닌가.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을 형성함으로써 한나라당과 그 후보에게 혐오감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지지를 반사이익으로 얻어보겠다는 속셈이 분명한 만큼, 국민들이 두꺼비 대접을 안 받으려면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는 길밖에 없다.
[[국민일보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