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재욱-경제정책 당국자 발언 신중해야 한다
<포럼> 경제정책 당국자 발언 신중해야 한다
안재욱 (경제75/ 28회) / 경희대 교수, 오하이오주립대 방문교수·경제학
경제는 ‘자기충족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상황을 언어적으로 정의하는데 따라 그 정의를 실현시키는 행동이 유발된다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교사가 한 학생에게 장차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면 그 기대를 받은 학생의 성적이 실제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경제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30년대 대공황 때 발생한 금융공황이다. 1920년대 초 일시적인 경기 후퇴가 오고, 고평가된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끌어내리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통화량을 증가시켰다. 통화 팽창은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했다. 그러나 통화량 증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이를 퇴치하기 위해 FRB는 갑자기 통화량을 줄였다. FRB의 긴축통화정책 기조를 눈치 챈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매하기 시작하여 대공황의 서곡이 시작됐다.
거기에다가 후버 정부가 제정한 스무트홀리(Smoot-Hawley) 관세법 때문에 경기가 더 나빠졌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외국 제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미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된 외국 정부들은 미국 제품의수입을 금지하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당시 미국의 최대 수출품은 농산물이었는데, 판매처를 잃은 많은 농가가 파산했다. 농산물 주생산지는 미국의 중서부 지역이었고, 농가에 대출을 해주었던 중서부 지역의 은행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당시 금융의 중심지였던 동부지역의 은행들에는 예금인출 사태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은행 도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중서부 은행에 대해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토록 하는 은행휴일(bank holiday)을 선언했다. 그러자 동부 지역의 예금자들이 자신들이 거래하는 은행들도 은행휴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 인출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동성이 부족한 은행들이 도산했으며 은행 파산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국민의 자기충족예언 현상을 불러일으켜 경기 후퇴가 금융공황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로 주식시장이 한때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과 정책 담당자의 말 한마디가 ‘자기충족예언’처럼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빠르게 회수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혼란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한 발언은 적절치 못하며 경제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어 유감이다.
물론 권 부총리가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시장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금융 불안을 해소하고 싶었다면 경제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경제부총리로서 했어야 할 일은 우리 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일이다. 최근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금융위기는 정부 개입이 심하고 재산권이 불안한 국가일수록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영향으로 국내 증시가 다른 주요국 증시에 비해 3배 가까이 떨어졌던 것은 우리 경제의 기초가 불안하다는 증거이며, 현 정부 들어와서 정부 개입이 더욱 심해지고 사유재산권이 많이 침해되는 조치로 재산권이 불안해진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따라서 경제부총리로서 금융위기를 우려하고 금융 불안을 해소하고 싶으면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을 줄이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제도들을 개선하여 재산권 안정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옳은 길이다.
[[문화일보 2007-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