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로스쿨 성공하려면


동문기고 노동일-로스쿨 성공하려면

작성일 2007-08-27

[fn시론] 로스쿨 성공하려면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 법대 교수 -
 
이른바 로스쿨법(법학 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의 국회 통과 이후 대학사회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 로스쿨 도입을 추진하는 대학들은 방학도 없이 준비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인가신청서 작성부터 교육시설 점검, 교육과정 편성, 도서관 준비, 외국대학 및 외부기관과의 제휴, 신임교수 영입 등에 하루도 쉴 날이 없다. 교수들 역시 속된 말로 불난 호떡 집 주인들마냥 동동거리며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다른 학교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대학들마다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는 중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찻잔 속의 태풍처럼 변화의 소용돌이가 대학 내부에 머물고 있는 점이다. 로스쿨이 불러 올 혁명적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야 할 우리 사회는 대학의 움직임을 먼 산 불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대학사회만, 그것도 로스쿨 도입을 준비 중인 일부 대학에만 로스쿨의 충격파가 미치고 있는 것이다.

법학 전문대학원이라는 공식 명칭이 말해주듯 로스쿨은 기존의 학부 법학교육을 대학원 과정으로 전환하는 체제다. 현재 전국 97개 법과대학 중 40여개 대학이 로스쿨 인가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들 대학이 로스쿨 준비에 쏟은 돈은 총 2000여억원에 이르고 앞으로 그만한 돈은 물론 얼마든지 더 투자할 용의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로스쿨 유치에 사활을 건 대학들의 경쟁의식에는 살벌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로스쿨법 통과는 어려움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로스쿨 도입까지는 15년이라는 기간과 치열한 사회적 논쟁이 필요했다. 그러나 의견 다툼은 주로 로스쿨 총입학 정원,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 등에 대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직역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근거를 댈 수 있는 문제들에 매달려 핵심적 의제에 대한 논의는 피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바로 로스쿨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달성하려고 하는 교육의 목표와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로스쿨 도입은 자원배분의 심각한 왜곡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 분야 육성, 소외계층의 교육기회 확대 등에 쓰여야 할 소중한 재원이 학교 간 이상경쟁 심리를 바탕으로 법학교육에 집중되고 있다. 이 모든 희생의 결과로 배출되는 법조인이 국가적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로스쿨은 엄청난 사회적 낭비의 대명사가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 대학의 교육담당자들 책임이 물론 크다. 현재의 학부교육을 대학원으로 바꾸는 정도나 법학교육의 정상화는 로스쿨 도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야말로 교육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법률가를 길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정도는 목표로 잡아야 로스쿨 도입을 위해 희생한 사회 각 부문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법은 제1조에서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우수한 법조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거니와 대한민국 로스쿨이 지향하는 법조인 상(像)은 대학의 힘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 로스쿨을 통해 양성되는 법조인 상은 과거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법조단체 등이 나서서 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법조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법조인 상과 함께 로스쿨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도 개진할 필요가 있다. 교육 과정은 물론 교육 방법에 있어서도 정부와 기업, 관련 단체들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법치행정을 지향하는 정부가 앞장서 새로운 법조인에 대한 각 부문의 활용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 현실상 로스쿨을 도입하지 않은 대학의 법학부를 존속시킬 수밖에 없는 옹색함도 궁극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스쿨의 취지에 맞는 교육과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는 돈만 투자한다고 달성되지 않는다. 로스쿨 도입은 흔히 점(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선(교육을 통한 양성)으로의 변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점을 이으면 선이 되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로스쿨은 혁명적인 변화다. 그에 상응한 혁명적인 사회적 변화가 따르지 않을 경우 값비싼 최신형 휴대폰을 그저 걸고 받는데나 쓰는 (나를 포함한) 일부 세대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외국처럼 변호사 운전기사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대학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이넨셜뉴스 2007-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