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룡-위험사회와 안전불감 의식


동문기고 송재룡-위험사회와 안전불감 의식

작성일 2007-08-24

<포럼> 위험사회와 안전불감 의식
 
- 송재룡 / 경희대 교수·사회학 -
 
지난 며칠 사이 서울과 부산에서는 연이어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대형 크레인이 넘어지고, 놀이기구가 뒤집히고,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한 사고가 발생하여 졸지에 여러 사람이 다치고 귀한 목숨을 잃었다. 벌써부터 ‘인재(人災)’형 사고라는 말들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이번에도 사고 예방 및 안전관리 시스템 정비와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식의 판박이 해법이 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제도적·시스템적 해법의 실효성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집중적으로 취해 온 제도적·시스템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똑같거나 비슷한 유형의 사고와 재난이 빈발하는 현상을 주목한다면 많은 이들의 부정적 시각이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인위적 위험들이 커지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사고(재난) 예방과 대처는 제도·시스템과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의 미적분학(calculus of risk)’이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 산업사회가 위험을 과학적·합리적으로 인지·통제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시스템적 능력을 획득하게 됐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유럽 및 북미 국가들과 일본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과거 산업화 과정을 통해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수단과 방법들을 강구해 이를 제도화하고 시스템화하는 데 성공했다. 곧,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응하면서, 과학화 및 계량화의 논리에 기초해 사고(재난)의 위험을 예측·관리·통제하는 합리적 방법과 메커니즘을 제도적·시스템적으로 뿌리내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모든 잠재적 위험은 인지되고 통제될 수 있는 대상으로 포착,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경우, 산업화 과정에서 이 ‘위험의 미적분학’ 개념이 형식적으로는 받아들여졌지만 제도와 시스템 속에 실천적 규범(rule)으로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산업화·근대화는 필연적으로 위험 증대를 수반한다. 하지만 양과 속도의 극대화에 집착했던 한국식 근대화의 논리에 따라 이 위험들은 합리적 인지와 통제 및 예방적 관리의 경계로부터 벗어나게 됐다. 그로 인해 잠재된 인위적 위험에 대한 인식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잠재된 위험을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안전 대책과 수단에 대한 제도적·시스템적 조치 또한 효율적으로 마련하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시스템 차원의 한계와 문제는 위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태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우리의 위험불감적 업무 방식이나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안전설비나 위험표시 장치 등을 규정대로 갖추지도 않은 채 도로를 보수하거나 기초공사를 하는 일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사고예방 규정들을 무시한 채 관행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예방 규정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분야는 아마도 화재예방일 것이다. 사고 위험성이 매우 강함에도 불구하고 방화 설비나 장치들의 정상 작동 여부를 가리기 위한 주기적 테스트와 조치를 철저하게 이행하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이같은 우리의 ‘위험 불감’ 의식은 ‘빨리빨리’증후군에도 잘 나타나지만, 그보다는 ‘대강 철저히’ ‘대충대충’ ‘괜찮아요’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의 업무 태도나 습관에 더 잘 드러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사고나 재난의 효율적 예방은 제도·시스템 차원의 보완뿐 아니라 그것을 움직이는 우리의 의식과 태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접근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문화일보 2008-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