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찬규-정상회담의 '뜨거운 감자' NLL
[시론]정상회담의 '뜨거운 감자' NLL
- 김찬규 (대학원 박사과정 22회)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영토개념이냐, 안보개념이냐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논쟁이 뜨겁다. NLL 문제가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에 관한 담론은 국민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53년 7월27일 채택·발효된 한국 휴전협정에는 한반도에 1개의 군사분계선이 규정되고 있을 뿐(제1항), 바다에는 경계선이 없다. 대신 피차의 해면을 존중하고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바다에 관한 언급의 전부이다(제15항).
이렇게 되면 제일 문제되는 곳이 서해 5도와 북한의 옹진반도 사이의 해역이다. 서로 지근(至近) 거리에 있는 이곳에 경계선이 없으면 군사충돌 가능성이 불을 보는 듯해 어렵사리 실현된 휴전체제의 실효성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같은 휴전협정상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53년 8월 유엔군 사령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 NLL이다. 당시, 북한의 해·공군력이 괴멸상태에 있었던 반면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던 유엔군 측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휴전체제의 유지를 위한 비상한 자제력의 발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이 설정된 NLL에 대해 북한 측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은 1973년 12월1일이었다. 이날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북측 수석대표 김풍섭(金豊燮) 소장이 NLL이 유엔군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정된 것이라면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NLL은 일방적으로 설정된 것이긴 하지만 설치 목적이 정당했고 대략적인 중간선에 따른 것이어서 설치 방법이 합리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설치 후 20년간 북한이 이에 묵종(默從)해 왔기에 1973년 현재 그것은 한국 휴전협정 체제의 일부로 굳어져 있었다는 게 법적 해석이다.
NLL은 1973년 현재 휴전협정 체제의 일부로 굳어져 있었기에 그후 자행된 북측의 도발행위는 휴전협정 체제 위반이고 그전에 있었던 도발행위는 그때마다 실력으로 격퇴됐을 뿐 아니라 군사정전위원회라는 공식적 기관을 통한 이의제기가 없었으므로 묵종상태를 중단시킬 법적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NLL은 이러한 것이기에 영토개념이랄 수도 없고 안보개념이랄 수도 없다. 그것은 한국 휴전체제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휴전협정상 “협정의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 쌍방 사령관들의 상호 회의를 거쳐야 한다”고 돼 있다(제61항). NLL은 협정 체제의 일부이기에 이에 대한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 쌍방 사령관, 다시 말해 유엔군 총사령관과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상호 회의”를 거쳐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 나아가 민족 통합에 기여할 모든 일은 다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명분 하에 거쳐야 할 절차를 거침이 없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다룰 사안은 아니다.
남북 간에는 1992년 2월19일 발효한 기본합의서가 있고 9월17일 발효한 불가침 이행 합의서가 있다. 후자에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제10조) 해상 불가침 경계선 협의는 남북 간에 평화체제가 정착되고 난 후에 한다는 것이 이 합의서의 취지이다. 쌍방의 선행 정부 간에 성립된 합의를 뒤따르는 정부가 정당한 사유 없이 유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끝으로 우리는 현 대통령의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달 남지 않은 임기의 대통령이 현상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다 줄 일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해서는 안 되리라고 본다.
[[세계일보 2007-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