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별나라로의 명상여행


동문기고 김상준-별나라로의 명상여행

작성일 2007-08-22

[과학칼럼]별나라로의 명상여행

- 김상준 / 경희대 교수 우주과학 -

요즘 풍경 좋은 캐나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혹은 백두산으로 명상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삼림욕, 죽림욕 등도 유행하면서 도시생활에 찌든 샐러리맨들의 정신을 잠시나마 맑게 해주는 명상여행이 패키지 관광 상품으로까지 되었다.

한 명상 여행자는 캐나다의 드넓은 숲속에서 밤하늘의 황홀한 은하수를 볼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잘 보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였다. 명상장소가 이미 도시의 형광등 불빛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별을 잘 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 가난하였을 때는 저녁 먹고 대문만 나서면 밤하늘 별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캐나다의 명상여행지에서조차 멀리 탈출하여 깊은 산속에 서야만 별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누가 “천문학자로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 오면, 필자는 항상 “등산가도 쉽사리 가볼 수 없는 로키 산맥, 안데스 산맥, 하와이 산, 대서양 군도의 높은 산 정상에 올라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천문대는 도시의 빛 공해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칠흑 같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마을로부터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된다.

첨단 천문대에서 대형 망원경을 유지하고 운전하는 천문학자들은 인간 세상과 떨어진 곳에서 상주해야 한다. 인간들 속에서 부딪히며 그로 인해 생기는 희로애락을 항시 맛보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천문학자로서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속세를 떠난 불자의 모습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별을 바라보면 영혼이 맑아져-

자연은 항상 우리에게 스승이었다. 선조들 중에는 난세를 피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 심신을 온전히 보전한 예도 있고, 요즘 정치인들 중에는 가끔 중요한 결정을 세속에서 쉽게 내리지 못하여 사찰 방문이나 등산을 하며 자연 속에서 내리는 예도 있다. 엉뚱한 결정을 한 경우도 보지만, 대체로 자연은 우리의 마음을 비우게 하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며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면 영혼이 무한히 맑아짐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캐나다의 눈 덮인 산과 바이칼 호수의 맑은 물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약간 엉뚱한 발상일지 모르지만 필자의 생각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모든 짐승들을 복종시킨, 자연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먹이사슬 최고점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동물들이 우리와 같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이 밤중에 들판에 나와 하늘을 본다면 그들의 정신이 맑아질 수 있을까. 자연의 본 모습은 생각보다 잔혹한 것이다. 서로 먹고 먹히는 현장이 자연이고, 식물들조차 서로 경쟁하며 적자만 생존할 수 있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 자연이다.

어둠 속에서 언제 맹수들이 들이닥칠지 모르고, 그 동물 자신도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배고픔 때문에 생존을 위해 눈을 밝히면서 먹이가 될 다른 동물을 찾아 헤매는 곳이 자연 아닌가. 때로는 자연재해가 닥쳐 까닭도 모르고 물에 떠내려 가든지, 추위에 혹은 불볕더위에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거의 없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자연을 관조하고 자연의 조화에 감탄을 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하더라도 신이 아닌 이상 자연 전체를 지배할 수는 없다. 우주에서 보는 인간은 너무나 미약하고, 100년을 산다 할지라도 우주의 스케일로 볼 때 아침에 나타났다 금방 스러지는 이슬에 불과하다.


-잠시 관조하며 속세근심 털길-

다행히 요즘은 우리나라도 일부 지방도시에 시민천문대, 혹은 군 단위의 군천문대를 설립하여 시민이나 군민들에게 캐나다나 바이칼 호수를 가지 않더라도 별나라와 우주를 보고 명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비록 멋진 호수나 시원히 펼쳐진 삼림은 볼 수 없을지라도 무한한 우주 속에 나를 되돌아보며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 잠시나마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2007-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