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구-수술 부위 바뀔까 걱정하는 환자 심정 이해


동문기고 장성구-수술 부위 바뀔까 걱정하는 환자 심정 이해

작성일 2007-08-08

수술 부위 바뀔까 걱정하는 환자 심정 이해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11> 배에 ‘이쪽이 아닙니다’라고 쓴 환자
“나를 못믿나” 야속했지만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
요즘은 수술실로 옮기기전 수술 부위 반드시 표시

- 장성구 (의학71/ 25회) / 경희의료원 비뇨기과 교수 -

수술을 앞둔 환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여러가지 걱정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병의 치료 경과보다는 당장 내일로 닥친 수술 자체에 대한 걱정이 더 많다.

나를 수술할 의사는 실력 있는 사람인가? 수술 후 내가 마취에서 잘 깨어날 수 있을까? 의사가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수술할 의사가 수술 전날 과음하지는 않았을까…. 이런 걱정은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갖기 마련이고, 환자가 이런 우려를 한다고 싫어하는 내색을 하는 의사가 있다면 수양이 덜 된 의사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간혹 언론에는 의사들의 실수가 보도된다. 수년 전에 위(위장)를 수술해야 할 환자에게 갑상선을 수술하고, 갑상선을 수술할 환자의 위를 수술한 사건이 있었다. 환자 본인이 황당할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담당 의사 역시 일생을 두고 스스로를 원망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장기를 완전히 바꾸어서 수술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일이기는 해도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조차 이를 경계하라고 교육시킨다. 특히 필자처럼 비뇨기 계통의 암을 수술하는 의사들은 좌우 대칭인 신장(콩팥)암을 수술하는 경우 좌우가 바뀌지 않도록 항상 조심한다.

필자도 환자들이 그렇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하는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왼쪽 신장암으로 수술을 받아야 될 50대 중반의 여성 환자의 경우였다.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에 들어가려다 환자의 오른쪽 옆구리 피부에 무엇인가 써있는 것을 보게 됐다. 자세히 보니 매직펜으로 선명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 이쪽이 아닙니다.’ 수술 부위가 왼쪽이니까 오른쪽을 수술하지 말라고 표시한 것이었다. ‘나를 이렇게 못 믿었단 말인가?’ 하는 야속함이 머리를 스쳐 갔다. 한편으로는 ‘환자들이 이토록 두려워한다는 것을 예전엔 내가 미처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미안했다.

환자는 수술 후 경과가 좋았다. 퇴원할 때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고, 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그 환자는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사실 환자들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병원 자체에서, 또 의사들 스스로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병실에서 수술실로 환자를 옮기기 전에 수술 부위를 반드시 펜으로 표시하게 돼 있다. 또 수술 시작 전에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서로 한 번씩 돌아가며 확인한다.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할 때 예방할 수 있는 실수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이다. 신뢰는 병의 치료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요즘 사회적 분위기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단순히 사회적 계약의 관계로만 몰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에서 변하지 않는 윤리는 의사와 환자가 ‘인간적 관계’에 의해 맺어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냉랭해진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의사들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불신이 생기고, 불신을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기면 오히려 환자들에게 피해가 간다. 환자의 권리와 의사의 의무를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2007-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