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한국 휴전협정, 종전선언이 필요한가?


동문기고 김찬규-한국 휴전협정, 종전선언이 필요한가?

작성일 2007-08-08

[시론]한국 휴전협정, 종전선언이 필요한가?
 
- 김찬규 (대학원 박사과정 22회)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지난 7월27일은 한국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5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50년 6월25일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사망자 62만8833명, 부상자 106만4453명을 남기고 1953년 이날 끝을 맺었다. 최근 한국인 23명이 아프간 반군 탈레반에 납치돼, 온 국민의 관심이 그쪽에 쏠림으로써 54주년을 맞는 한국 휴전협정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나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담론이 재연되기 시작한 이때 이 협정을 다시 생각해 봄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휴전협정에는 그것이 전투의 일시적 정지를 규정한 것인가, 전쟁상태의 종결을 규정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전쟁상태의 종결이 아닌, 전투의 일시적 정지를 규정한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 시각으로 돼 있다. 이것은 제2차 만국평화회의 때인 1907년 헤이그에서 채택되었던 육전규칙(陸戰規則)에 휴전이 ‘전투의 정지’라고 정의되고 있음이 그 근거이다(제36조).

하지만, 한국 휴전협정은 전쟁상태의 종결을 규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협정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의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기 위해 체결된 것”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전문). 국제법상 조약의 전문은 그 자체 법적 효력을 가질 뿐 아니라 실체적 규정의 해석에 대한 지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한국 휴전협정을 그 자체의 규정에 눈을 감은 채 전투의 일시적 정지를 규정한 데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문서의 표제에 사용된 ‘휴전’이란 말에 현혹된 결과라고 본다. 그러나 국제조약의 해석에 있어서는 사용된 표현에 현혹돼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당해 조약의 문맥과 그 취지 및 목적에 비춰 성실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1969년 조약법에 관한 윈협약 제31조1).

한국 휴전협정은 정녕 전쟁상태의 종결을 규정한 것이기에 별도의 전쟁종결 선언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 최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논함에 있어 평화협정의 전 단계로 전쟁상태의 종결선언, 이에 대한 남북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일방적 전쟁종결 선언을 해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구상이 회자되고 있지만 한국 휴전협정이 전쟁상태의 종결을 규정하고 있기에 전쟁종결 선언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고 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한국 휴전협정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아직도 유효한가 하는 문제도 있다. 한국 휴전협정은 1개의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남북에 각각 2㎞씩의 비무장지대를 두어 도합 4㎞에 이르는 완충지대를 만듦으로써 쌍방의 적대행위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쌍방은 협정 체결 당시 보유하던 것 이상의 전력 증강을 못하게 돼 있고 이를 감시하기 위해 중립국감시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그리고 협정의 실시를 감독하고 협정위반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군사정전위원회도 설치돼 있다.

협정 체결 후 54년이 경과하는 동안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에 관한 규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기되었다. 비무장지대에도 쌍방간 모두 지뢰가 매설되고 진지의 구축 및 중화기의 도입이 실시됨으로써 그 본래의 취지가 중대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휴전협정이 효력을 지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협정 당사자는 한결같이 그 효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일방적 폐기가 가능하다는 게 국제법적 해석이다. 협정이 폐기되면 다른 조약이 없기 때문에 무조약 상태가 된다고 할 수밖엔 없지만 유엔 헌장을 비롯한 일반 국제법의 적용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협정의 폐기가 곧 전쟁의 재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일보 2007-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