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최혜원-소련의 정치 포스터
예술, 정치 선전의 하수인이 되다
[명화로 보는 논술] 소련의 정치 포스터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경희대 강사 -
정치적 선전미술
독재자가 지배하는 암울한 시대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유로운 사상과 예술 표현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었다. 예술의 수난 시대라고나 할까. 정치성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혹은 공익적이고 교훈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탄압당하기도 하였다.
또 예술은 대중에게 쉽고도 빠르게 인식시킬 수 있다는 강점이 있기에 과거 지배자들에게는 선전 도구로 이용되기에 가장 적합했고, 많은 예술가들이 정치적인 목적 아래 희생당했다. 특히 그림과 같은 미술 분야는 효과가 더 컸기에 당대의 가장 뛰어난 화가들을 궁정화가에 임명하여 지배 권력과 정치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생산해내게 하였다. 왕이나 권력자들의 영웅적 초상화와 업적을 기리는 기념 역사화들이 그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전쟁 당사국은 적국의 부당성과 자국의 정당성을 선전함과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패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미술을 이용했다. 이 모든 것들이 ‘정치적 선전미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은 치안 유지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화가들을 제거하기도 했지만 포스터나 조각, 건축 등의 미술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알렸다. 특히 ‘벽보 미술’이라고 하는 정치적 선전도구로서의 포스터는 종종 전체주의 국가에서 선전 도구로 많이 이용된다. “앞으로 나가자, 독일 침략자들을 무찌르자, 조국의 국경에서 그들을 몰아내자!”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소련의 정치 포스터’같이 대중에게 정치적 이념을 주입해 군대에 징집하는가 하면 전쟁과 혁명 등을 선동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공산주의 선전미술에 바쳤다.
‘선전’은 원래 신앙이나 가치관과 관습의 체계적인 보급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의 기원은 17세기에 바티칸의 구교세력이 신교개혁파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종교단체를 1622년 교황 그레고리 15세가 ‘신앙의 전파를 위한 교단’이란 의미의 라틴어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그대로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
이처럼 ‘선전’은 종교의 포교에서 발생하였지만, 오늘날 선전활동은 인간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 종교·도덕·정치·사상·경제 등 광범한 분야를 무대로 하고 있다. 지금은 유권자, 특정 집단, 계층이나 계급, 일반 국민을 상대로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정치적인 주의, 주장을 설명하면서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선전’이라는 단어는 조작된 설득, 위협, 기만, 강요 등의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선전’의 의미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20세기에 전개된 이데올로기의 갈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부정적으로 이용된 또 다른 정치적 선전미술의 예
이렇게 강한 프로파간다성을 드러내는 선전활동인 정치적 선전미술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정치와 연관되면서 부정적으로 이용된 사례이다. 이런 ‘정치적 선전미술’의 또 다른 예는 바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의 나치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전쟁과 학살의 현장으로 몰고 간 또다른 주역은 바로 군국주의 일본이다.
일본 또한 예술의 자유를 탄압하고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했다. 일본제국주의는 태평양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쟁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선전용으로 많은 그림들을 그리게 하였다. 다양한 장르에서 선전미술이 제작되었는데, 일본제국주의는 당시 일본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을 거의 대부분 전쟁의 후방에서 철저히 이용하였다.
정권과 국가의 이데올로기나 정책에 선전도구로서 이용되는 정치적 선전미술,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볼 때 20세기의 혼란한 정치적 격동 속에서 예술이 차지한 역할과 그 영향력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가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으로 계속해서 진화해 갈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조선일보 2007-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