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백승현-검증의 늪’에 빠진 언론
[옴부즈맨 칼럼―백승현] ‘검증의 늪’에 빠진 언론
- 백승현 (정외72/ 24회) / 경희대 정외과 교수 -
한나라당 경선후보 검증논란이 많은 국민들을 짜증나게 한다. 여권 후보는 그 지지율을 다 합해도 20%를 넘지 못하고, 도토리 키 재기인 양 20여명이나 난립하여 검증의 ‘검’자 꿈도 못 꾸고 있는 판이다. 그런 터에 유독 이명박, 박근혜 등 한나라당 양강 후보를 둘러싼 검증시비 기사가 연일 신문과 TV를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과정서 미리 검증함으로써 취약 후보를 일찍 걸러내고 후보의 면역력을 키움으로써 대선 패배의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논리에서 시작된 게 이른바 한나라당 내 검증논란이다. 그러나 한때 양대 후보 지지율 합계가 70%를 넘어, 누가 나가든 본선 승리는 따 놓은 듯하니까 본선도 아닌 경선에서부터 이전투구 양상이 시작되었음은 하여간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시정잡배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정치인들의 언설에 지친 국민들은 선거와 정치문화 수준이 정책대결 위주의 질 높은 담론공방 차원으로 끌어올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흠집내기 비방전으로 치닫는 한나라당 경선모습은 5년 만에 정치의 품위 격상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 여망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국민을 상대로 이야기하기’보다 ‘자기들끼리의 싸움’에 열중하는 우리 정치판은 언제나 김대업식 폭로전의 저급한 수준에서 벗어날 것인가.
기사감이 될 만한 뉴스거리를 좇을 수밖에 없는 언론의 속성상, 국내언론들은 경선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이런 검증논란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내느라 이리저리 쫓아다니기에 바쁠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검증시비와 관련된 기사가 언론지면을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칠 정도로 과중하다. 마치 신문과 방송이 모두 ‘검증의 늪’에 빠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 점에서는 국민일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경선캠프나 정치판을 쫓아다니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언설들을 기사화하는 데 치중하는 것은 지면 채우기 관점에서는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의 품위격상을 이루는데 언론이 나름대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선거판도가 정책대결의 장으로 나아가도록 각종 정책관련 기획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는 게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언론이라도 ‘국민을 상대로 이야기하기’를 시도해 봄직하다. 예를 들어 교육, 조세, 산업, 사회복지, 통일, 외교, 국토개발 등 각 영역의 정책대안들에 대해 상이한 관점들을 비교하면서 각 후보의 예상배치점이 어디쯤인지 가늠해 보는 기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런 차별화된 기획기사를 다루는 국민일보를 보고 싶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취재와 기사작성에 매달리기보다 심층분석에 전념할 수 있는 여유인력 확보가 선결요건일 것이다. 거대 신문들에 비해 지면수가 적은 점을 극복하고 동일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도 기획기사의 확대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고급인력 확보는 국민일보가 시도해 볼 중요 과제의 하나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신문 중 가장 선명한 고해상도 사진과 그림을 제공하는 국민일보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및 휴먼웨어에서도 앞서가는 신문이 될 것이다.
[[국민일보 2007-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