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이-한번 진보는 영원한 진보?


동문기고 윤성이-한번 진보는 영원한 진보?

작성일 2007-07-13

[열린세상] 한번 진보는 영원한 진보?
 
- 윤성이 /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번 진보는 영원한 진보이고, 한번 보수 역시 영원한 보수인가. 그간 진보와 보수 세력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보도를 떠올려보자.
 
광화문에서 혹은 시청앞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의 시위장면을 보면 항상 같은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있다. 시위를 하는 이유가 국가보안법이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든 혹은 사학법이든 상관없이 항상 낯익은 얼굴들이 같은 편에 서 있고 그때그때 앞세운 현수막과 구호만이 달라질 뿐이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 한번 보수는 영원한 보수이고 한번 진보 또한 영원한 진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찌하여 사안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의 진보는 환경에서도, 교육에서도 그리고 여성문제에서도 항상 진보이고, 보수 또한 모든 사안에서 동일하게 보수적 성향을 가질 수 있을까. 분명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은 아닌 듯싶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환경이나 교육 문제에 관해서는 보수적 성향을 보일 수 있을 것이고, 거꾸로 정치적으로는 보수이지만 문화나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적 성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이렇게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갈등은 진보 대 보수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단순화해 있다. 진보와 보수는 모든 사안에서 항상 같은 줄에 서게 된다. 한번도 이 줄이 엉키거나 엇갈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사회갈등에 대한 이분법적 이해방식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비롯되었다.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정치문제뿐만 아니라 노동·여성·인권 등 모든 사안이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로 귀착되었다.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 권위주의 정권에서 비롯됐기에 이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어떤 문제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민주 대 반민주는 지극히 타당하고 정확한 인식의 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든 갈등을 보수 대 진보로 환원하는 인식구도는 올바른 것인가. 남북문제와 대미관계뿐만 아니라 환경, 교육, 문화, 여성, 인권 등 모든 사안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이분법적 틀 속에 담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행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학 원론 첫 시간에 매번 강조하는 것이 사고의 유연성이다. 고교까지는 교과서 내용이 참이고 진리였으나 대학에서는 읽고 듣는 모든 것을 비판적 자세로 수용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통해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면서도, 나와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당부한다. 이러한 사고의 유연성이 밑받침이 될 때 비로소 사회현상에 대한 정확하고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20년을 겪으면서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권위주의 정권 하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때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이제는 진보 대 보수 대결로 바뀐 것이다.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양 집단간 대결이 여전히 사생결단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민주화세력에 권위주의 정권은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 진영간의 대화와 타협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생각과 성향의 다름은 당연한 것이고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찾아 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모든 사회현상을 진보와 보수의 틀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직된 사고 틀로서는 결코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영원한 해병’은 아름다운 자긍심이나 영원한 진보와 보수는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일 뿐이다.

[[서울신문 2007-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