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원-케테 콜비츠 ‘전쟁은 이제 그만!’


동문기고 최혜원-케테 콜비츠 ‘전쟁은 이제 그만!’

작성일 2007-07-13

되풀이해선 안될 말 “당신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명화로 보는 논술] 케테 콜비츠 ‘전쟁은 이제 그만!’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경희대 강사 -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케테 콜비츠)

반전미술의 대표작가, 케테 콜비츠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반전 작가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는 이 작품 속의 절규하는 청년을 통해 반전의 메시지를 강하게 표출하였다. 1924년에 석판화로 제작되어 독일의 거리 곳곳에 나붙었던 그녀의 반전 포스터들은 반전운동 확산의 촉매 역할을 했다. 그녀의 첫 반전 포스터인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반전 포스터다. 전쟁으로 얼굴이 앙상해진 청년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팔을 치켜들고 크게 소리치고 있다. “전쟁은 이제 그만!” 이라고….

그녀가 반전미술에 뛰어든 것은 아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후부터다. 그녀는 ‘전쟁’이라는 연작 목판화 작품을 제작하면서 반전미술을 시작했다. 콜비츠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의 독일 미술은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어용미술이었다. 콜비츠는 그런 아카데미화풍의 아틀리에 예술을 공허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자 아틀리에 안에서만 머무는 예술을 실패한 예술로 생각했기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현실에 눈을 돌리는 실천적 미술운동을 펼쳐나갔다. 예술을 통한 사회참여를 이끌어간 것이다.

콜비츠는 부당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절망을 고스란히 우리 앞에 펼쳐놓고 있다. 굶주린 아이들을 지키고, 인간의 탐욕과 잔혹함이 불러온 전쟁을 고발하는 일련의 판화작품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성찰을 통해 강한 호소력을 가진다. 콜비츠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가와 관객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고, 이것은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들이라고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들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은 콜비츠의 개인적 불행은 비단 그녀만의 것은 아니었다. 이 땅의 죽어가는 모든 생명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케테 콜비츠는 피눈물을 쏟으며 판화를 새겨 갔다. 아들의 자원을 극구 말렸던 그녀는 전장으로 아들을 내보내면서 “아기의 탯줄을 또 한 번 끊는 심정이다. 살라고 낳았는데 이제는 죽으러 가는구나”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결국 그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개인적인 불행은 당시 독일의 모든 어머니들이 겪고 있는 일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제국주의의 야욕 때문에 원치도 않는 전쟁에 끌려 나가 희생당했다. 전 유럽의 젊은이들의 꽃다운 목숨을 아무런 의미 없이 빼앗아갔다.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슬픔 속에 갇혀있었던 콜비츠는 마침내 자신의 불행을 인류애와 휴머니즘으로 승화시켜 예술적으로 표현해냈다. 인류의 고통을 자신의 작품으로 대변한 것이다. 이런 작품들로 인하여 콜비츠는 분노의 시대를 산 ‘인류의 어머니 화가’로 일컬어진다.



전쟁은 이제 그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전쟁만큼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을까? 전쟁의 역사가 바로 우리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전쟁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그로 인한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 세기 전의 어머니인 그녀가 겪은 일들을 지금 우리의 어머니들도 겪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에서,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려고 머나먼 곳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는 것인가? 명분 없는 전쟁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간다. 이런 반전 포스터들과 그림들은 과거의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그 어떤 명분도 정당화될 수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인 전쟁으로 인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우리의 아이들의 생명과 꿈이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로부터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우리는 또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2007-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