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언-성(城)과 축제


동문기고 김동언-성(城)과 축제

작성일 2007-07-06

성(城)과 축제

- 김동언 /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

 문명의 시작과 더불어 함께 해 온 집짓기가 개인의 영역을 한정하고 짐승 또는 사람 등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성 쌓기는 개인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게 되면서 공동체와 집단으로 확대된 중요한 역사적 발전 단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성을 쌓는 목적은 공동의 이익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리 정한 둘레만큼 성을 쌓아 소위 ‘우리 땅’이라는 행정적인 영역을 표시하고 그 안에 행정관청이 상주하면서 통치업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통치업무는 군사적인 목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성곽은 외부 공격으로부터의 안전성을 담보하게 된다.
성은 그 자체가 최고의 병기이며 방어 수단이다. 역사적으로도 지형과 목적에 따라 견고함과 방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축성방법을 관찰할 수 있다. 견고하게 쌓아 놓은 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방위력으로써의 위용을 과시하고 문명의 수준을 나타내기도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심해 내놓는 방법이 곧 병법과 과학기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밖에 심리적 또는 문화적 목적으로 성 쌓기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적에게 심리적 위압감을 주고 문화적인 구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길게 쌓아 놓은 만리장성 등이 이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각 문화권마다 집짓기와 성을 쌓아 올리는 구조 및 축조의 방법은 매우 다양하며 건축 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아름답지만, 본래의 목적과 기능 때문에 성곽 자체는 다분히 폐쇄적인 이미지를 떨칠 수가 없다.
우리 역사상 이러한 성 쌓기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 군주는 아마도 조선시대의 정조 임금일 것이다. 수원 화성(華城)은 정조(正祖)가 당쟁 때문에 뒤주 속에서 참혹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2년 10개월에 걸쳐 화려하고도 웅대하게 축성한 것이다.
실학자 유형원과 정약용의 설계를 기본으로 삼아 과학적으로 구조물을 치밀하게 배치하면서도 우아하고 장엄한 면모를 갖추었다고 평가 받는다. 성곽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활용한 것, 그리고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뿐만이 아니라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 또한 용재를 규격화하고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12월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인류 문명과 역사의 유물로써 남겨진 성이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담보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이 성에서 새로운 의미의 성을 쌓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동안의 성 쌓기가 폐쇄와 권위, 그리고 남과 구분을 짓는 행위의 상징이었다면, 새로운 문명은 인류에게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다양한 가치가 더불어 공존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모두 성 위에서, 성 안에서, 성 밖에서 함께 뛰어 놀아야 한다.
선조들의 고단한 노동의 땀방울이 유형의 축조물로 남았다면, 우리의 땀방울은 놀이와 축제를 통해서 새롭게 소통하는 기회의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의 힘이 있다면 축제를 통해서 그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올여름 ‘화성국제연극제’에 기대를 갖게 하는 이유이다.

[[중부일보 200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