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원-다비드 ‘마라의 죽음’


동문기고 최혜원-다비드 ‘마라의 죽음’

작성일 2007-07-06

민중의 권리 위해 투신한 혁명가에게 보내는 오마주
[명화로 보는 논술] 다비드 ‘마라의 죽음’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경희대 강사 -

지난 20세기에는 이념의 갈등, 계급간의 갈등을 비롯한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을 통해 저항과 비판과 희망을 표현했다. 비록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지만, 예술은 생각을 전파하고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화가들의 그림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을 위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때론 정치적 견해와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는데 이런 미술을 ‘정치미술’이라고 한다. 정치에 대한 풍자나 비판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미술을 말한다. 미술에서 정치 참여적 미술의 성격을 보이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과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시민혁명 당시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가 그린 ‘민중의 벗, 마라에게’라는 혁명가에게 보내는 오마주(Hommage,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말)의 작품이 그러하다.


민중의 벗, 마라에게…

마라(Jean Paul Marat, 1743~1793)는 민중의 권리를 위해 혁명에 투신한 신문기자였는데, 욕조에서 암살당했다. 당시 마라는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인 민중지도자로 자코뱅당의 당수로 활동하며 프랑스 국왕 루이 1세의 실각을 주장했다. 마라의 절친한 동료이기도 했던 프랑스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다비드는 이 위대한 혁명가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하여 그를 마치 순교자처럼 그렸다. 죽은 마라의 자세는 마치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자세와도 같으며, ‘마라에게’라고 새겨진 나무 상자는 비석 대신이고, 욕조는 관인 셈이다. 급진적인 당원들은 이 작품 앞에서 거의 종교적인 경외감을 표했다.

민중을 위해 헌신하다가 죽어간 한 영웅적 인간의 죽음을 다비드는 혁명적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이용했다. 마라는 신문의 기고를 통해 민중들의 고통스런 삶을 대변했으며 늘 민중의 곁에서 검소한 삶을 살았다. 평소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그는 암살되던 날에도 피부병 치료를 위해 욕조에 몸을 담그고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림 속의 나무상자는 책상 대용이었는데 그 위에 편지와 지폐 한 장이 놓여 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남편이 조국을 수호하다 죽은, 다섯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 지폐를 보내 달라.” 이것은 마라의 혁명성과 민중성을 알리기 위해 다비드가 의도적으로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화가에 의해 종교적 숭엄함이 느껴지도록 변용된 순교자의 그림

다비드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고전적인 이상미, 정제된 형식미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당시 프랑스 고전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였다. 과격했던 시민혁명 속에서 절대왕권의 붕괴를 주장했던 그의 정치적 관심은 고전적 형식미에 의해 절제되고 경건한 종교적 숭고미로 변용되어 나타났다.

‘마라의 죽음’그림 속에서는 민중적 영웅의 비참한 최후가 비장미가 흐르듯 잘 묘사되어있다. 영웅이라면 과격한 선동적 이미지를 흔히 떠올릴 만도 한데 다비드는 마라라는 인물의 영웅적 행적보다는 도덕적 인간성에 더 초점을 맞춘듯 하다. 간결한 화면 구성과 차분한 색조, 그리고 정적인 분위기로 인해 그의 초라해 보이기까지 해 보이는 쓸쓸한 죽음을 보여준다.

다비드는 금욕적이고 헌신적인 순교자의 모습에 하나하나 꿰어 맞추듯이 간결하고 장식이 없는 나무 상자와 그 위의 펜과 잉크병 같은 소도구, 거칠어 보이는 천의 꿰맨 자국과 어두운 벽면 등을 그려 넣었다. 거기에 가슴에 선명한 칼자국과 욕조의 핏물과 핏자국, 힘없이 뒤로 젖혀진 머리와 기울어진 몸, 늘어뜨려진 팔, 늘어뜨려진 팔 등은 비극적인 인물의 최후를 강조하듯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런 탁월함으로‘마라의 죽음’은 현실 도피적인 순수미술도 아니고, 또한 과격한 정치참여미술도 아닌 그보다 여운이 오래 남는 감동을 준다. 그래서 잔잔하지만 더 강한 감동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2007-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