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민경배-선플 촉진할 댓글정책 모색을
[기고] 선플 촉진할 댓글정책 모색을
- 민경배 /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참혹’하리라! 성경 구절의 마지막 단어 하나를 이렇게 ‘참혹’으로 바꿔 놓으면 악플의 속성에 딱 들어맞는다. 실제로 악플의 시작이란 참으로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 어떤 악플도 모종의 치밀한 사전 계획과 음모에서 작성되는 경우란 없다. 그래서 악플의 시작은 늘 깃털처럼 가볍고 거품처럼 허망하다. 하지만 악플이 초래하는 결과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얼마 전 한 소녀가 악플로 인해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경이적인 다이어트로 40㎏ 감량에 성공한 여고생이 방송사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네티즌들의 악플 공세에 시달린 것이 끝내 이런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악플의 내용은 이번에도 다이어트 과정에 근거 없는 시비를 거는 미약하고 조악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미약한 시작이 끝내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다.
올해 초 유니씨 사건이 터졌을 때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은 너도나도 악플을 여론의 도마에 올려놓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많은 기획 기사와 칼럼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고, 방송사들은 악플을 주제로 삼아 각종 토론회와 인터뷰, 보도 프로그램을 숨가쁘게 찍어 냈다. 네티즌들도 악플러를 규탄하고 자성이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댓글 문화에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악플에 대한 관리를 보다 철저히 강화하고 댓글 정책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 왔지만 정작 당사자인 포털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있다가 다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말았다. 정부가 올 7월부터 주요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 역시 악플의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당장 이번 사건만 해도 문제의 악플들이 올라왔던 방송사 홈페이지 게시판과 자살한 학생의 미니홈피가 이미 실명제로 운영되던 공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금방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만 터지면 정부가 내놓는 대안이라는 것이 여전히 실명제 타령뿐이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나마 새로운 움직임이라면 “악플 대신 아름다운 댓글인 선플을 달자”는 착한 캠페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플 캠페인이 시작된 지 불과 보름 만에 또 다시 악플 자살 사건이 터졌으니 자칫 그 좋은 취지조차 무색해진 것이나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실 선플 캠페인은 인터넷 실명제처럼 별반 효력도 없을 규제 방안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접근 방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착하고 아름다운 댓글만 달자는 호소만으로는 성과를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포털도 선플을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댓글 정책을 모색하며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혼탁해진 게시판 공간을 떠나 블로그에 정착해 새로운 여론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블로거들의 주도적인 참여도 필수적이다. 이렇게 선플 캠페인이 하나 둘 구체적인 실체를 만들어 나갈 때,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2007-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