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원-명화로 보는 논술-티치아노 ‘천상과 세속의 사랑’


동문기고 최혜원-명화로 보는 논술-티치아노 ‘천상과 세속의 사랑’

작성일 2007-06-21

아름다운 것은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것은 아름답다
명화로 보는 논술-티치아노 ‘천상과 세속의 사랑’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경희대 강사 -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1576)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표적 작가이다. 피렌체의 조각적인 형태주의와는 대비되는 베네치아의 회화적 색채주의를 확립한 작가로 유명하다.

고전적 양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격정적인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적인 그림을 그려서 베네치아파 회화의 대표적 작가이면서 동시에 고전주의 양식에서 바로크로의 전환을 가져온 작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떨어진 붓을 주워 줄 정도로 그를 사랑했으며 작위까지 주었다고 한다. 그가 이룩한 형식과 색채의 혁명은 후대의 예술가들이 수세기 동안 힘들게 오르려 했던 미술의 정상이었다.

그가 죽었을 때 르네상스는 실질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는 90세가 넘도록 외롭게 살면서 훌륭한 걸작들을 많이 남겼지만, 제왕과 교황, 군주들과 제후들이 그의 성화와 초상화와 신화들을 탐낼 정도로 그의 그림은 매우 인기가 높았고 얻기가 힘들었다. 자연풍경과 인물들의 묘사를 조각적이고 입체적인 이전의 표현양식이 아닌 빛과 따뜻한 색채의 조화와 모자이크 같은 질감표현의 대가였다.

‘천상과 세속의 사랑’은 티치아노가 27세 때 그림 속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먼 산 위의 성곽을 향해 말을 타고 올라가는 한 귀족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렸다. 베네치아의 귀족 니콜로 아우렐리오(Nicolo Aurelio)가 그의 신부 라우라 바가로토(Laura Bagarotto)에게 주는 결혼선물로 그려진 것으로, 제목은 18세기 후반에 붙여졌다.

전원의 생기 있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풍경이 뒤로 펼쳐지는 가운데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과 나체의 여인이 고대 인물상이 조각된 석관(石棺)위에 앉아 있고, 두 여인의 사이에서 사랑의 신 ‘큐피드’가 빈 관 속에 팔을 넣고 있다.

이 그림 속에는 암호와도 같은 해독해야 할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가 숨어있다. 상징과 알레고리 모두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방법은 조금 틀리다. 상징이 추상적인 것을 눈에 보이는 사물로 표현한다면 알레고리는 보다 은유적이고 의인화된 것으로 표현한다. 그림을 보면서 그것들을 하나씩 해석해보자.

일단 두 미인들은 신 플라톤적인 천상의 사랑과 세속적인 인간의 사랑을 상징한다. 화려한 옷을 갖춰 입은 여인은 결혼으로 이어지는 허영과 세속의 물질적 사랑을 은유한다. 흰색의 드레스, 장갑, 허리띠, 은매화 화관, 늘어뜨린 머리와 장미가 결혼을 상징한다. 반면 얼굴은 쌍둥이처럼 비슷하지만 누드로 그려진 여인은 순결함, 영원한 숨김없는 진실, 지고지순한 천상의 사랑을 나타낸다.

또한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 옆에 놓인 보석이 담긴 꽃병은 ‘세속에서의 짧은 행복’을 상징하고, 나체의 여인이 들고 있는 검은 기름등잔은 ‘천상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상징한다. 이 두 명의 여인 가운데에 큐피드가 있다. 두 가지 사랑 사이의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여인은 모두 큐피드의 어머니로서 천상의 비너스와 지상의 인간적인 비너스로서 각기 다른 두 가지 사랑을 상징한다. 그것을 대변하듯 지상의 비너스의 배경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토끼 한 쌍과 권세있는 가문의 결합을 상징하듯 커다란 성이 보인다. 반면 천상의 비너스 뒤쪽에는 멀리 교회의 탑이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많은 암시를 가진 복잡한 그림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티치아노는 그런 복잡한 문학적 주제에 대조적인 비평적 주제를 그린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18세기에 붙여진 제목으로 인해 고착된 이 부정적인 상반된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사랑으로 균형을 나타낸다고 한다.

옷을 입은 여인의 모성애가 누드의 여인의 높게 들려진 등잔이 상징하는 영원하고 천상적인 사랑으로의 승격을 의미해 궁극적으로는 ‘미와 사랑에 대한 찬미’라는 것이다. 티치아노의 붓은 항상 생명의 표정을 만들어 냈다는 표현처럼 이 세상의 사랑과 천상의 사랑 모두를 찬양하려는 의도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조선일보 2007-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