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식-미술시장 열기의 빛과 그림자


동문기고 최병식-미술시장 열기의 빛과 그림자

작성일 2007-06-19

[기고] 미술시장 열기의 빛과 그림자

- 최병식(미교 73/ 28회) / 미술평론가·경희대 교수 -

세계 미술시장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6년 세계미술시장은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 총액 75억달러, 전 아트마켓 상승률이 전년 대비 25.4%에 달하고 100만달러가 넘는 작품은 적어도 810점이 넘을 정도였다. 1990년 최고치에 거의 도달한 전성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비하여 출발은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최근 3년간 수십년 세계시장의 속도를 한꺼번에 따라잡고 있다. 얼마전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아트페어’에는 총 6만40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판매액 역시 175억원을 기록하면서 우리나라 미술시장에 대한 잠재력을 확인했다. 신진작가들을 위주로 한 3월의 아트서울전 역시 예년의 2배 정도 판매액을 올린 것으로 집계되는 등 미술시장의 상승세는 분명히 체감적인 현상을 넘어 과열이라는 우려가 나올 지경이다. 수 백명에서 불과 3년 사이에 수 천명으로 늘어난 컬렉터의 숫자는 초청강연 때마다 실감하는 부분이다.

이 같은 현상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물론 그간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던 문화욕구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른 것도 큰 동기이겠지만 유휴 자금의 흐름이 여러 곳에서 제어되면서 미술시장에 유입된 것이 결정적인 불을 붙였다. 결국 ‘대안투자’라는 인식이 이미 선진국에서는 실행된 지 오래이지만 이쯤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미술시장은 이미 투자에 열을 올리는 재테크 형국으로 모드를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미술시장의 희소식은 당연히 미술계 전체에도 단비이다. 시장의 활성화는 작가들의 창작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되며, 문화 향유에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또한 해외 판매의 경우 국가재정은 물론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열기에 숨어 있는 불안감을 지나칠 수는 없다. 검증이 채 시작도 되지 않은 특정 작가를 겨냥하여 집중 구매하는 식의 ‘싹쓸이’ 구입 형태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 ‘블루칩’ 작가들의 단기간 가격 상승은 상식을 넘는 수준이다. 대동소이한 작품들을 복제하듯 내놓는 일부 작가에 대한 실망감 역시 씁쓸할 따름이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기존 중견들에 대한 조명이 너무나 대중적 인기 위주이고, 글로벌 시대로 가는 신진작가들의 발굴이 아직도 미미하다. 여기에 겨우 2년 정도밖에 안되는 활황 뒤에는 구입한 작품들을 되팔기 위한 전략이 이어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비로소 미술품의 구입과 판매가 얼마나 다른 입장인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과거 일본이 그러했지만 세계시장과는 상관없이 ‘나홀로 마켓’의 과열 징조를 보이는 최근의 우리시장 형태 또한 불안한 부분이다. 결국 오랜 기간에 걸친 순수한 ‘애호정신’과 문화적 거래가 무시되고 재테크 현상이 지배적일 때는 스스로 하락의 원인을 제공하고 유입된 자금들이 한 순간 썰물과 같이 미술시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예술품은 이미 매우 진귀한 생활장식품으로 변모했다”라는 마빈 프리드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세계의 아트마켓은 보편화되고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변모의 저변에는 생활에 밀착된 안목과 감식안의 역사를 통하여 얻어진 긴 터널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향신문 2007-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