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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우물 안 후보검증
[시사풍향계―임성호] 우물 안 후보검증
- 임성호 /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당내 경선을 외부와 격리된 우물 안에서 치르면 곤란하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 바깥 세상이 어떤지, 비가 오는지 가뭄이 들었는지 혹은 주변에 먹이가 많은지 천적이 도사리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네끼리 싸우는 데만 몰두하면 어떻게 될까. 그 중 살아남은 한 마리가 우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좋지 않은 운명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대선주자 캠프는 과연 외부 상황에 맞춰 경쟁을 펼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내에서 이기고 보자는 생각에 급급해 내부 싸움에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선 규칙을 둘러싼 벼랑 끝 대치, 상대방 정책공약에 대한 독설 공방, 특히 후보검증과 관련한 전면전을 보면 이런 회의(懷疑)가 허황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과 자격을 갖췄는지, 큰 윤리적 하자는 없는지, 이모저모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본선이 아닌 당내 경선에서는 외부 상황 돌아가는 것을 보며 정치적 맥락에 맞는 경쟁을 펼치고 후보 평가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즉, 외부의 상대측을 봐가면서 당내 경선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어느 정도로 정책공방 및 후보검증의 수위를 조정할지 판단해야 한다. 당내 경선은 본선 승리를 위한 예비단계이기 때문이다.
본선 상대가 누군지 인물은커녕 어떤 정당이 어떤 식으로 등장해 어떤 본선 대결구도가 만들어질지조차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당내 후보들끼리 결사 항전을 벌이며 상처를 주고받는다면 본선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 정치는 상대적인 것이다. 본선 상대에 대한 신중한 계산 없이 처절하게 자체 경쟁을 치를 때 우물 밖의 상대적 상황은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박 양 캠프의 전면전은 구태의연한 인식의 결과다. 오늘날 세분화된 사회구조가 복잡하게 얽히고 급변하는 속에서 정당도 더 이상 내외부를 구분하기 힘들다. 당원이 주인인 정당 내부와 유권자가 심판인 외부 환경이 명확히 구분된 것은 과거 단순한 산업시대의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거 인식에 젖어 있는 양 캠프는 정당을 바깥으로부터 절연된 우물처럼 생각해 그 안에서 승자가 되는데 급급해한다. 경선과정이 곧 여론과 본선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간과하고 본선은 나중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대착오적 인식에 더해, 현재 당 지지도가 제일 높으므로 당내에서 이기면 본선도 무난할 것이란 안이한 태도도 근시안적인 경선제일주의를 부추기는 것 같다. 요즘 사회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여론도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잊어버린 몰역사적 안이함이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주별로 동일한 일정에 따라 예비선거를 함께 치른다. 그러므로 후보들이 당내 경쟁자 이상으로 상대 정당을 의식해 전자보다 후자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크고, 본선 경쟁력을 고려하는 정도가 높다. 반면에 현재 한나라당의 경선은 본선 상대측의 윤곽과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준비되고 있어, 마치 결승전 같이 큰 갈등을 수반하고 이후의 본선 맥락은 고려치 않은 후보검증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우물 밖에서 누가 미소짓고 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가는데도 말이다.
[국민일보 2007-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