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찬규-中 선박 '뺑소니' 묵과 안된다
[시론]中 선박 '뺑소니' 묵과 안된다
- 김찬규 (대학원 박사과정)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12일 중국 다롄(大連) 앞바다에서 제주선적 화물선 골든로즈호가 중국 컨테이너선 진성(金盛)호와 충돌한 뒤 침몰해 한국 선원 등 16명이 실종하는 참사가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경비함과 민간 선박 20척, 항공기 3대가 동원돼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성과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고 후 진성호는 그대로 현장을 떠나 다롄항에 입항했으며, 사고 발생 7시간 뒤인 12일 11시쯤에야 옌타이(煙臺)해사국에 “충돌사고가 있었는데 상대 선박이 침몰한 것 같다”고 신고했다 한다. 이것이 구조작업에 결정적 차질을 가져다준 최대 원인이 아닌가 생각되는 바이다. 진성호의 이 같은 소행은 어떻게 평가돼야 하는가.
그것은 정녕 뺑소니라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고 당시 당해 해역에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 충돌 시각이 불침번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원이 잠든 때였다고는 하나, 거의 같은 크기와 무게의 두 선박이 충돌해 하나가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 충격으로 모두가 깨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궁금해서라도 상황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는 것은 뺑소니 이외의 것으로는 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진성호의 이 같은 소행은 중대한 국제법 위반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가 당사국인 1982년의 유엔 해양법협약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모든 국가는 자국 선박의 선장에 대해 선박·승조원 또는 승객에 중대한 위험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난사고를 당한 자에게 원조를 제공하고, 그들의 원조 요청이 있을 때에는 가능한 최대 속력으로 현장에 달려가 구조에 나서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충돌 시에는 상대방 선박과 그 승조원 및 승객에게 원조를 제공하고 가능한 경우에는 자기 선박의 명칭, 선적항, 그리고 기항하려는 가장 가까운 항구를 상대방 선박에 알릴 것을 자국 선박의 선장에 요구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제98조1).
진성호는 이 같은 국제법상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진성호 자체의 국제법 위반 행위일 뿐 아니라 자국 선박의 선장이 이 같은 국제법상 의무를 이행토록 확보해야 할 중국 정부의 국제법상 의무 위반이기도 하다. 1981년 4월9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인근 해역에서 미국 원자력 잠수함 조지 워싱턴호와 일본 선박 닛쇼호(日昇丸)가 충돌해 후자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도 전자가 그대로 현장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사과 및 손해배상을 함으로써 사건이 마무리됐다.
아직 발효되지는 않았지만 한중 간에는 지난달 10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총리 방한 시 체결된 해상수색구조협정이 있다. 한중 모두가 당사국인 1969년의 ‘조약법에 관한 빈협약’은 조약을 체결했으면 체약국은 발효 전이라도 당해 조약의 ‘취지와 목적’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고 있다.(제18조)
사건에 대한 늑장대응 등 본건에서 보여 준 중국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는 일반 국제법상 의무는 말할 것도 없고 해상수색구조협정의 취지와 목적에도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피해 선박 및 탑승 선원들의 권리 구제는 물론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중국 정부로부터 단단히 보장을 받아 둬야 할 것이다.
중국 정부의 태도 중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우리 측 공동수색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피해 선박의 선적국이 행한 공동수색 요청을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기에 중국 측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게 된다.
[세계일보 2007-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