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원-명화로 보는 논술 -스텔라의 ‘아마벨’


동문기고 최혜원-명화로 보는 논술 -스텔라의 ‘아마벨’

작성일 2007-06-12

명화로 보는 논술 -스텔라의 ‘아마벨’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경희대 강사 -

파리시내의 풍광을 망치는 흉물이었던 에펠탑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파리지앵들이 파리시내의 풍광을 망치는 흉물이 보기 싫어 파리를 떠나고 싶어 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그 장본인이 지금은 프랑스의 상징으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에펠탑 때문이었다면 놀랄 일이다. 오랫동안의 도시계획으로 잘 정비 된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한 파리를 사랑하는 당시 파리 시민들은 이 에펠탑을 환영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파리 시내 한 복판에 철판 쪼가리와 쇠가락을 뜯어 붙인 괴물 같은 이 철탑기둥을 혐오했다. 소설가 모파상은 이 흉측한 괴물을 보고 싶지 않아 파리를 떠나고 싶어 했는데, 매일 점심식사를 파리에서 유일하게 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에펠탑 2층 식당에서 했다고 한다. 에펠탑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조명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에펠탑의 조명을 동경하는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믿기지 않는 그의 에펠탑 혐오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한국에 제2의 에펠탑이 생겼다

17억 원짜리 괴물 같은 고철덩어리! ‘아마벨’


파리에 에펠탑이 세워진지 100여년이 지난 1999년 한국에서도 과거 에펠탑이 겪은 수모를 똑같이 당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서울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 센터 앞에 있는 프랭크 스텔라의 대형 옥외조각 작품인 ‘아마벨, Amabel’의 철거논란이 그것이다. 원제목이 ‘꽃이 피는 구조물’이라는 이 작품은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세계 철강협회장의 추천을 받아 독일의 ‘캐피탈’지에 금세기 최고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던 미국의 프랭크 스텔라에게 주문제작한 작품이다. 스텔라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였고 포항제철이라는 회사의 이미지에 부합하데 중점을 두어 1년 6개월의 제작을 거쳐 철을 소재로 높이 9m, 무게 30t 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스텔라가 직접 작품의 위치와 각도를 선정하고 직접 작은 부재들을 공수해와 현장에서 제작 완성했다. 포스코 센터의 건축조형과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통해서 본 20세기 인간 문명의 방향성에 대한 비판적 발의를 담은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하지만 1997년 새로이 문을 연 포스코 센터 앞에 세워진 지 2년 만에 철거논란이 일어났다. 대중으로부터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비판과 비행기 추락의 잔해처럼 흉측해 보인다는 이유로 철거를 한다는 것이었다.

단지 고철덩어리에 불과해 보이는 이 작품의 가격이 17억 5천4백만 원이고 1억 3천만 원의 설치비가 들었다는 사실도 대중들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아마벨’의 철거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서울이 국제적인 도시라고 해도 세계인의 주목을 끌만한 랜드 마크(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건조물을 지칭하는 말)가 될 만한 유명 건축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예술적인 작품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건축물을 지으면서 예술작품을 구입 설치해야 하는 이른바 ‘1%법’에 따라 많은 경우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특색 없는 환경 조형물들이 서울 도심의 빌딩들을 장식해왔다. 하지만 건축물의 장소와 공간의 분위기를 고려한 작품들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일률적으로 진열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벨’의 경우는 체계적인 마스터플랜을 통해 독특하고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낸 좋은 예라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공공미술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공공미술의 주체에 대한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다행히(?) 이‘아마벨’은 테헤란로에 자리 잡은 지 10년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원래 있었던 그 자리를 떠난 적은 없다.

하지만 미술계는 성공적인 공공미술의 논쟁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작품의 소유주인 기업은 ‘아마벨’ 주위에 나무를 심고 화단을 꾸며서 조금이라도 눈에 덜 띄게 작품을 가리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지금 서울의 첨단금융과 IT 산업의 메카인 강남 테헤란로를 지날 때면 고층빌딩 숲 가운데 우리 공공미술의 치부인양 숨어있는 ‘아마벨’ 찾을 수 있다. ‘아마벨’은 분명히 그 자리에 있긴 있으나 실제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파리의 에펠탑과는 정반대의 운명을 걷고 있는 ‘아마벨’을 보면 우리 문화수준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조선일보 2007-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