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구-암적 존재


동문기고 장성구-암적 존재

작성일 2007-06-11

[논단―장성구] 암적 존재 

- 장성구(의학71 / 25회) / 경희대 교수·의학전문대학원 -

인체에 발생되는 암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필자와 같이 종양학(암에 대한 학문)을 전공하는 의사들이 흔히 받는 질문이다.

우리 몸은 위치에 따라 그 장기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종류가 각각 다르다. 예를 든다면 위(위장)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위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모양을 한 세포로 구성돼 있다. 피부는 피부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형태학적으로 위의 세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세포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세포는 일정 기간 생존하다가 사멸(죽어버리는 것)하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난다.

그러나 암인 경우는 본래 세포가 변형되거나, 완전히 다른 장기의 구성 세포가 자리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세포는 전혀 사멸하지 않고 끝없이 분열해 덩어리를 형성하고, 주위 조직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임파선이나 혈액을 타고 다른 장기로 전이(멀리 퍼져나가는 것)를 한다.

이런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제라는 약이 많이 개발됐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없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대표적 예를 들어보면 암세포에는 자기를 죽이기 위해 항암제가 세포 내로 들어오면 이것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작용을 하는 일종의 펌프가 세포 벽에 부착돼 있다. 그래서 암세포 내에 암세포를 충분히 죽일 수 있는 항암제의 농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없는 것이다.

암세포는 제가 살아남기 위해 세포 벽의 펌프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일종의 자금)를 환자로부터 뺏어 사용한다. 암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 교활한 수단을 쓰는 것이다. 도마뱀이 살아 남기 위해 제 꼬리도 미련 없이 잘라버릴 수 있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주위에서 한 조직의 일원으로 전체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지 못하고 매사 구성원을 괴롭히고, 비이성적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흔히 암적 존재라고 표현한다. 자기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울 뿐, 주위 사람을 괴롭히거나 피해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그를 욕하거나 흉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의지가 있고, 사회 표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받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는 어지러울 정도로 사회적 가치가 타락된 듯하다. 특히 정치를 한다는 분들은 자기만이 살기 위해 언제든지 도마뱀도 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암적 존재의 기본적 구성 요소인 암세포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듯하다.

아무리 꼬리를 잘라도 국민의 명철한 시각으로 보면 도마뱀은 도마뱀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지, 정치적 결단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저만 혼자 살아남으려고 이당 저당 옮겨가고, 국민 혈세는 혈세대로 뺏어다 쓰는 국회의원 되라고 선출해준 것은 아니다. 이런 짓은 암세포가 숙주(인체)의 피를 말리는 것이나,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못한 책임이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이지 국민이 낸 세금 가지고 꼬리 자르고, 얼굴에 분 단장 다시 하는 것이야말로 구태 중의 구태다.

[국민일보 200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