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원-명화로 보는 논술 -렘브란트 ‘야경’


동문기고 최혜원-명화로 보는 논술 -렘브란트 ‘야경’

작성일 2007-06-11

‘빛과 그림자’ 대비로 인물 심리 그려내다
명화로 보는 논술 -렘브란트 ‘야경’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경희대 강사 -

원제목이 ‘프란스 반닝 코크대장의 민병대: 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인 ‘야경’은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르네상스 이후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1606~1669)의 작품이다.

당시 최고의 초상화가인 렘브란트에게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시민 방범대의 대장 프란스 반닝 코크와 대원들이 모금을 해서 주문 제작된 작품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에는 전통적으로 ‘시민군’ 또는 ‘민병대’라고 불리는 방범대가 있어왔고, 그들의 단체초상화가 그려져 시민군 회의실을 장식하는 것도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렘브란트의 시기에는 상징적인 조직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야간순찰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멋지게 그려달라고 주문을 한 것이었다. 렘브란트는 이 주문을 받고 아주 독특하고 개성있는 인물군상화를 그리고자 했기에 꼬박 2년의 시간이 걸려 완성했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주문자들은 똑같이 돈을 내고도 누구는 잘 보이는 위치에 많이 그려졌고, 누구는 구석에 어둡게 조금밖에 그려지지 않았다고 불평불만이 많았다. 게다가 그림 한가운데 주문자도 아니면서 가장 많은 빛을 받으며 그려진 소녀가 있어 주문자들의 원성이 컸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 그림이 걸려있던 장소의 들어가는 문에 인물들의 이름을 기록한 명판을 붙여 놓기까지 했다. 실제로 이 ‘야경’은 야간순찰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한낮에 행진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 중앙의 대장인 프란스 반닝 코크가 그 옆의 부관에게 행군명령을 내리는 순간을 가장 크게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는 별상관이 없는 듯 대원들은 각자의 임무에 충실한 각기 다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시민 방범대는 주로 부유한 중상류층의 남자들로 구성되었는데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지만 명예로 여겨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점을 암시하려는 듯 렘브란트는 능숙하지 못해 보이는 대원들의 어수선한 행동들을 더 강조하고 있다.

‘빛의 화가’, 거장 렘브란트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부인 사스키아가 죽어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이 그림으로 인해 이후 주문자들이 줄어들어 생활은 궁핍해져갔다. 결국에는 빚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 파산을 하고 아들이 흑사병으로 죽는 등 비참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이 ‘야경’은 각각의 인물들의 저마다 개성있는 얼굴과 표정, 그림 속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명암대비와 색채효과로 대원들의 심리와 극적 효과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풍속화는 아니고 집단 초상화이다. 이전의 초상화들이 실내에서 포즈를 취하고 앉아 있어 초상사진을 찍듯 인물을 그렸다면 이 그림은 야외현장에서 스냅사진을 찍듯이 그려진 것이다. 생동감 있고 자연스러운 화면구성에 강한 명암의 대비로 마치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개개인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이 렘브란트는 인물 한명 한명의 얼굴 생김새, 표정, 동작 하나하나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비록 당시엔 세속적인 명성을 잃어 갔지만, 기존의 형식적인 집단초상화의 구성에서 과감히 탈피해 새로운 시도를 한 렘브란트의 열정으로 인해 현재 후세에 작품성 있는 미술사적 명작이 되었다.

2006년은 렘브란트가 태어난 지 400년이 되는 해였다. 네델란드에서는 이 거장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대대적인 행사가 벌여졌다.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에서는 렘브란트의 특별전시가 열렸는데 그의 대표작인 ‘야경’을 비롯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또한 ‘렘브란트’라는 뮤지컬도 제작되어 공연되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강력한 해상왕국이었던 네델란드의 경제적 풍요로 인한 귀족들의 상류층 후원자가 많아서 젊어서 일찍 명성을 얻은 화가였다. 하지만 상류사회의 화려한 생활도 잠시 불행한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낸 렘브란트는 비관하지 않고 역사에 남을 유명한 걸작들을 이 시기에 완성한다.

[조선일보 200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