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재욱-학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다산칼럼] 학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 안재욱(경제 75/28회) / 경희대 교수·경제학 -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리면 괴로워하고,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른다면 슬퍼할 것이다." 장자의 '변무편'에 나오는 말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평등주의에 입각한 교육정책으로 다리가 늘려지는 물오리가 되고 다리가 잘리는 학이 되고 있다.
그 괴로움과 슬픔을 견디지 못해 해외로 조기유학을 떠나는 학생의 수가 수만명에 이른다.
가정 형편이 좋아 조기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은 그래도 낫다.
그러지 못하는 학생들은 사(私)교육에 짓눌려 얼굴이 노랗게 떠있다.
사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은 절망 그 자체다.
그런데도 이 땅의 교육부 관리들,정치인,전교조 교사들은 고교등급제 불가,본고사 불가,기여입학제 불가 등 학생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수평적 평등을 강요하는 3불(不)정책에 핏대를 세운다.
3불정책에 따라 대학은 교육부가 정한 지침에 의해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차로 A고등학교의 내신 1등급 학생보다 B고등학교의 내신 5등급 학생이 자질과 실력이 훨씬 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한 내신과 수능 점수 비율이 학생 선발기준이 된다.
3불정책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고 학의 다리가 긴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질과 실력이 나은 학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3불정책은 실력 있는 학생이 대학에 가지 못하고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입학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은 짧은 물오리의 다리를 길게 만들고 긴 학의 다리를 짧게 만드는 것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항상 어려움과 고통이 따른다.
3불정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학입시의 경쟁을 완화하고,사교육비의 증가를 막고,교육의 기회 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3불정책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쩌랴.실제로 나타나는 결과는 그 반대인 것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정부가 가치 있다고 판단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채택하는 정책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로 하면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임대료와 식품가격을 통제했을 때 가장 고통 받았던 사람들은 바로 그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임대료와 식품 가격이 통제되자 주택과 식품의 공급이 감소해 가격이 급등했고,상승한 임대료와 식품가격 때문에 부(富)와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집과 식품을 구하기 어려워 곤란을 겪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임대 및 식품 시장뿐만 아니라 어떤 시장이든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하는 시장에는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모두 나타났다.
경쟁할 수 있는 통로가 적으면 적을수록 경쟁은 심해지고 그것이 다양하다면 경쟁은 훨씬 누그러진다.
3불정책은 정부가 정해놓은 획일적인 잣대에 의한 평가방법으로 인해 재능과 개성이 각각 다른 학생들이 거의 일률적인 시험관문을 통과해야만 하는 제도다.
때문에 3불제도는 대학 입시의 경쟁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을 격화시켜 왔다.
또 경쟁이 심해지니 내신과 수능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 사교육비가 더욱 증가했다.
그래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은 대학에 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뿐만 아니라 고교 간 수준차를 인정하지 않는 3불정책은 우수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역차별이며,오히려 교육의 기회 균등에 위배된다.
이러한 점에서 다른 정부의 규제와 마찬가지로 3불제도는 가난하지만 공부를 잘해 자립형 사립고,특목고 등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다니는 가난한 학생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제도다.
3불정책의 폐지를 간곡히 호소하는 서울의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의 '사랑하는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제발 3불정책과 같은 교육평등정책을 폐지해 우리의 사랑스런 물오리와 학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덜어주자.
[한국경제 2007-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