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의 목요칼럼>
상처뿐인 스승의 날
안호원
news@pharmstoday.com
요즘 들어 “스승다운 스승 없고 제자 같은 제자 없다”는 말이 여과 없이 나돈다. 실로 듣기는 좋은 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가 덤덤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어찌하다보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스승, 존경스러운 스승을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아울러 열심히 가르쳐 주고 싶은 제자마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와서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힘들 정도로 막상막하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선생들도 학생들도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래도 과거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고 특히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서는 소변도 보아서는 안 된다”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적 사상으로 ‘군사부 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로서 스승을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나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아버지와 동일시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라의 왕이 죽으면 상복을 입듯 스승이 죽어도 모두 상복을 입었는데 이런 통념은 스승과 임금과 부모를 동일선상에서 똑같이 존경하는 미풍양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의 몸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육신에 부모가 있다면 나의 인격, 지성, 사상에 대해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든 스승은 정신적인 부모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재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올바른 지도를 받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울 모 대학교에서 18년째 강사노릇을 하는 후배. 강의 시간에 학생들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며 비록 변변치 않은 강사료를 받고는 있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산다던 고교 후배에게 15일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강의가 없는 시간이었는지 바로 통화가 가능했다. “스승의 날 꽃다발 받았느냐” 고 물었더니 “물론이죠. 제가 누굽니까? 며칠 전에도 원우회에서 주관하는 모임에도 초청을 받아 거나하게 한 잔 했습니다요.” 한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평소와는 달리 그 목소리가 힘이 없게 들렸다. 그래서 슬그머니 “인기 짱 교수가 너무 피곤한가? 목소리가 매우 지친 목소리 같구나.” 했더니 “형, 정말 솔직히 짜증나요. 요즘 들어서는 비애감마저 들고 산다는 게 슬퍼져요.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학생들이 영특해져 학점 받을 때만 얼씬거리고 그 기간이 끝나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거든요. 지금 혼자서 막걸리 한 잔 하고 있는데 시간 되면 이쪽으로 넘어 오실라우...” 한다.
예상은 했지만 비애가 담긴 그 후배의 말이 내 가슴을 면도날로 예리하게 가르는 것처럼 잔잔한 아픔을 느끼게 했다.
내가 아는 그 후배는 학교에서 ‘참교육’ 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을 했던 사람이다. 입버릇처럼 밝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올바른 정신을 갖고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 후배가 긴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말한다. “20여년 강사로 지내다보니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이 보이거든요. 한 예로 논문 통과 때 지나칠 정도로 부담이 가는 지도교수의 접대 같은 관행. 그러니 그런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스승에게 존경심이 생겨나겠어요?” 강사라는 직분에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철새처럼 이 학교 저 학교로 옮겨 다니며 식사도 혼자 할 수밖에 없는 그 후배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르면서 더욱 마음이 아파 온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도 교사가 정도를 걸으면 얼마든지 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입으로만 참 교육을 외치면서 제 실속만 찾는 위선자들….” 그래서 정말 공허하고 20여년의 강사 생활로 보낸 자신의 삶이 억울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처절한 그의 목소리. 전화를 끊고 나서 필자는 한 동안 창 밖을 바라보며 멍하게 서있었다.
그리고 그 후배에게 공연히 전화를 했다고 후회까지 했다. 사실 전화를 한 건 그게 아니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그래도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내게 맛있는 밥도 사주고 또 선물 티켓도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고 싶었던 건데….
사실 어떤 녀석들은 폐차 일보직전인 내 차를 보고 자기들이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면 돈을 모아 교수님 새 차를 사 드릴께요 하면서 날 즐겁게 하기도 했다. 또 내 강의를 들었던 몇몇 학생이 감사의 메시지를 문자로 보내기도 하고 꽃 화분을 내 방 앞에 갖다놓기도 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후배에게 전화를 했던 것인데….정말 가슴이 아픈 게 울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하다 이 나라의 교육계가 이 지경이 되어 인재를 양성할 교육기관이 일반 사(私)기업처럼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으로 전락해버렸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듣고 싶었던 건 정말 이런 얘기가 아니었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교육이 잘 되어야 한다는 건 모두 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교육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교육정책. 교육부와 학교가 자성을 보일 만큼 위기에 처해있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할 사람들이 아무래도 많은 것 같다.
누구나 한 두 분의 선생님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게도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시다. 스승을 욕보이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고교 3년 생활기록부에 “반항적인 기질에 엉뚱한 짓을 잘 하는 성격의 소유자” 라고 기록한 담임선생님이시다.
지금은 그 분의 함자나 모습도 기억나지 않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평가를 가볍게 하면서 제자는 먼 훗날까지 그 흔적이 아픈 상처로 남게 됐다는 사실이다. 내 기억에는 당시 월사금(등록금)이 많이 밀렸다고 많은 학생들 앞에서 세워놓고 부모님을 당장 모셔오라는 소리에 모멸감을 느낀 내가 담임선생님께 소리를 치르며 대든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교사는 그렇게 평가했지만 고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고교 동창들은 날 더러 학교 다닐 때 얌전했는데 지금도 변하지 않고 여전하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일단 교사가 되면 개인이기에 앞서 공인(公人)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평가는 학생의 장래를 생각하며 항상 신중하게 해야 한다.
지난 해 우연히 모 교육대학원생(현직교사)들에게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 때 교사는 공인이기에 특히 생활기록부 평가에 사사로운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 한 적이 있다. 스승이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제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살며 스승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 수도 있다. 훌륭한 장수 밑에는 약졸이 없듯 훌륭한 스승 밑에는 훌륭한 제자가 있는 법이다. 기쁨의 꽃을 받으며 축하를 받을 스승의 날인 15일 촌지논란 때문에 전국적으로 70% 이상의 학교가 정상 수업을 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슬픈 스승의 날인 것 같다.
차라리 스승의 날을 폐지했으면 한다. 어쩜 자업자득인지도 모를 이런 아픔이 더 이상 이 땅에서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