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찬규-盧대통령의 위험한 ‘북핵 균형론’
<포럼> 盧대통령의 위험한 ‘북핵 균형론’
- 김찬규(박사과정 22회)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오는 18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된다. 10·9 북 핵실험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조치가 잇 달아 나온 가운데 열리는 이번 6자회담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 리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해외 순방중 “북한이 설사 핵무 기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군사력은 우월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며 북한 핵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북한 핵이)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맥락과 표현은 다르지만 11월2 일 외국인 투자유치보고회 때도 노 대통령은 비슷한 발언을 한 적 이 있다. 언론에 보도된 표현만 놓고 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핵억 지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뜻으로 들린다.
핵억지력이란 핵보복 능력을 갖춤으로써 상대가 핵을 쓸 수 없게 하는 힘을 말한다. 핵전쟁에서는 선수(先手)의 일격이 치명타가 되기에 통상적으로는 보복이 불가능하다. 핵공격을 받으면 모든 것이 초토화되고 남는 것이라곤 중천에 떠오르는 버섯구름과 태 고정(太古靜)을 방불케하는 고요뿐이기에 보복이란 생각할 수 ?澎?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허점을 극복하기 위해 오래 전에 전략공군을 창설한 적이 있다. 이것은 핵폭탄을 적재한 장거리 폭격기를 24시간 교 대로 체공(滯空)케 함으로써 가상적국이 핵공격을 해와 본토가 초토화되더라도 체공중인 전략폭격기를 발진시켜 적에 핵공격을 가한다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그 후 핵잠수함의 배치로 이어 지다가 지금은 미사일방어(MD)체제로 이행되고 있다. 이것은 모두 가 핵보복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을 갖춤으로써 핵공격 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핵보복 능력이 있는가? 핵보복 능력이 있으려면 우선 핵무기를 가져야 하고 그 운반수단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국의 핵우산 밑으로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에 겐 앞의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없고, 반미(反美)면 어떠냐는 노 대통령의 언행에 비춰 뒤의 것도 선택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재래식 무기로 하는 군비가 핵억지력이 될 수 있 는가. 하지만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가 비대칭적 무기체계임을 삼 척동자도 안다.
유엔헌장상 자위권이 인정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 발 동은 ‘무력공격이 발생한 후’라야만 가능하도록 돼 있다(제51 조). 이것은 선제적 자위를 인정치 않는다는 의미이며 자위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채워진 무거운 족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하나는 핵무기가 사용 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적 국제테러가 발생한 때다.
핵무기는 선수의 일격이 결정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핵을 사용 하는 ‘무력공격이 발생한 후’라야 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하다면 그런 자위권은 무의미한 것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이후 어떻게 자위권이 발동될 수 있으며 설사 발동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현 국제법 상 핵무기가 사용되는 상황에서는 ‘핵폭탄의 투하에 선행하는 일정한 조치가 취해졌을 때’에는 무력공격이 발생한 것으로 간 주, 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1996년 7월8일 핵무기 사용의 적법성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이 있었다. 그ㄸ때 재판소는 핵무기 사용이 국제인도 법에 일반적으로 위배된다고 하면서도 “국가의 존망 자체가 문 제되는 자위의 극단적 사정 아래서 그 적법성 여부에 대해 명확 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핵은 이처럼 냉혹한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북핵 균형 발언은 국가보위의 책임을 진 국군 통수권자의 인식으로는 결코 적절치 못한 것이다.
[문화일보 200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