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건-재미있고 쉬운 ‘최첨단 물리학’


동문기고 남순건-재미있고 쉬운 ‘최첨단 물리학’

작성일 2007-04-26

[책@세상. 깊이읽기]재미있고 쉬운 ‘최첨단 물리학’         

- 남순건 (경희대교수·물리학) -

이론물리학의 묘미는 사람의 생각만으로 자연의 숨은 비밀을 밝히는 데 있다. 즉, 비싼 실험장비 없이도 펜과 종이만으로도 우주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순수이론물리학에서는 매우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 질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왜 공간에는 가로·세로·높이만 있는지,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고, 시간을 나타내는 데는 하나의 숫자만 있으면 되는지 등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다행히 이론물리학에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직관적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가 간혹 있다. 이러한 것을 경험한 이론물리학자는 매우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운이 따른 물리학자들이 칼루차와 클라인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가로, 세로, 높이라는 세 개의 공간 차원을 뛰어넘는 여분의 차원을 도입함으로써 여러 가지 자연의 기본 상호작용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을 제안했다. 자연의 기본 힘을 설명하는 방법 중 가장 우아한 것은 중력을 4차원의 시공간이 굽어진 것으로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이다. 중력 외에도 자연의 기본 힘에는 세 가지가 더 있다.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이다. 이 힘들을 설명하는 이론은 일반상대론과는 판이하게 달라 보인다.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기본 힘을 설명하고 있음은 무언가 현재까지의 물리학이 덜 발전해서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더 큰 이론적 체계에서는 네 가지의 기본 힘들이 하나의 통일된 언어로 적힐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칼루차와 클라인은 4차원 이상의 여분의 차원이 있는 시공간에서의 중력이 4차원에 투영될 경우 중력 이외의 힘들로 나타남을 계산을 통해 보였다.

20세기 초에 발표된 이러한 칼루차와 클라인의 아이디어는 1970년대 들어와 11차원의 초중력이론(supergravity)으로 발전했으며 11차원이 모든 힘이 들어갈 수 있기에 적합하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10차원의 초끈이론(물질의 근원이 점입자가 아닌 작은 진동하는 끈으로 되어있다는 이론)이 대두되어 지금까지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된 이론의 강력한 후보로 논의되고 있다.

사실 이론물리학에서는 아이디어의 부침이 심하다. 그러나 칼루차와 클라인의 여분의 차원의 아이디어는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론물리학의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사용되고 있다. 폴 핼펀은 20세기 물리학 중에서도 우주와 통일장 이론에 관해 일반인들에게 많은 책을 써오고 있는 저자이다. 이번에 출간된 ‘그레이트 비욘드’에서 핼펀은 최첨단 물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재미있는 글 솜씨를 잘 조합해 매우 읽기 쉬운 책을 만들어냈다. 보기 드문 책이다. 이러한 책을 접하는 사람은 제목만 들어도 어렵게만 다가오는 통일장 이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차원이 말린 모양을 표현한 갈라비 야우 모형(왼쪽)과 여러 겹 우주의 구조를 나타낸 그림. 

이 책은 최신 과학이론에 대한 과학사라고 볼 수 있다. 과학사라 해서 우리가 직접 만날 수 없는 과거의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만 등장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앞부분에는 물론 과거 물리학자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모아놓았지만-어떻게 이렇게 좋은 자료를 많이 수집하였는지 감탄할 만하다- 뒷부분에는 아직도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물리학자들의 산 증언이 많이 기록돼 있다. 특히 반가운 것은 필자가 미국에 막 유학 갔을 당시 칼루차와 클라인 이론으로 예일대학이 유명했는데 책에 지도교수 초도스의 일화가 잘 담겨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8할 정도를 할애해 칼루차와 클라인의 기하학을 통한 통일장 이론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학사에 흥미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제12장에서는 현재 물리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여분의 차원이 크다는 ‘브레인 월드이론’ 등을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의 우주와 아주 가까우면서도 보이지 않는 평행한 우주가 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다른 차원과 다른 우주를 발견하게 된다고 하면, 인간이 지구만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닌 이 우주에서의 중요한 위치를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분야에 대한 책을 몇 권 이미 섭렵한 독자에게는 물리학 자체에 대해서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낳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즉, 물리를 공부했건 안했건 간에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이론물리학자들 간의 대화와 상호 교류에 관한 증언은 이 책만의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몇몇 물리학자의 이름이 잘못 적혀 있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또 아쉬운 점은 이와 같은 훌륭한 책이 한국사람에 의해서 직접 집필된 적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그런 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2006-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