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레프트,라이트 그리고 중도


동문기고 노동일-레프트,라이트 그리고 중도

작성일 2007-04-26

[fn시론] 레프트,라이트 그리고 중도                     

- 노동일(법77/ 29회, 경희대 법대 교수) -

1948년 제헌헌법에는 흥미로운 규정이 있었다. 제18조에서 근로3권 보장과 함께 근로자의 이익분배 균점권(均霑權)을 명시한 것이다. ‘사기업의 근로자가 해당기업의 이익을 분배받을 권리’인 이익분배 균점권은 어느 모로 보나 좌파적이다. 그런데 이런 규정이 헌법에 명시된 배경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강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반면 별 실효성 없는 조문으로서 공허한 규정이 많았던 우리 헌법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견해도 있다.

제헌헌법은 통제경제와 자연자원의 국유화, 기업의 원칙적 국·공유제 등을 경제질서의 축으로 삼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증언도 많다. 헌법이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면 제헌헌법의 사회주의 내지 좌파적 규정은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뜬금없는 헌법 강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익 균점권은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 폐지됐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헌법 개정 과정에서 이런 좌파 규정이 살아남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후 역사의 흐름은 모두가 아는 대로 전개돼 왔다. 3공, 유신, 5공 등을 거치며 좌파 혹은 사회주의는 가장 금기시되는 용어의 하나였다. 남북한간 대결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우리 사회 분위기는 우파 일변도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경제건설을 위한 국가 총동원 체제에서 개인의 인권은 경시되고 다수와 다른 목소리는 이단으로 배척됐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물줄기가 달라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국민의 정부 이후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과 맞물린 사회적 의견의 다양성은 놀라울 정도다. 양심적 병역거부 등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더 이상 새로운 화제거리가 아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주창하는 이른바 ‘선군정치’에 관한 토론회가 최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열렸을 정도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시계추가 일방통행일 수는 없다. 오른쪽으로 한껏 당겨진 시계추가 왼쪽으로 기우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고장난 시계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가 교대로 집권하는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도 시대적 관점에서 볼 때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최근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뉴라이트 진영의 움직임이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굳이 뉴라이트라고 부르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우파를 표방하는 이들이 표출하는 인식의 일단은 우려할 만하다. 최근 ‘교과서 포럼’은 5·16을 혁명으로, 유신체제는 훌륭한 국가경영시스템으로 기술한 역사교과서 시안을 발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 다른 뉴라이트 모임인 ‘헌법포럼’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헌법은 제3공화국 헌법이며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을 가지려면 현행 헌법을 제3공화국 헌법처럼 개정해 좌파의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볼 때 좌익이 준동하고 세상이 다 뒤집어진 듯한 생각을 밝힐 수는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를 따지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 하고 유신독재 내지 군부독재를 미화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에도 한참 어긋난다.

흥미로운 점은 차기대선 유력주자들이 자신의 이념좌표를 한결같이 ‘중도’로 제시한 사실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고건 김근태·박근혜·손학규·이명박·정동영 등 6명의 주자들은 0(대단히 진보적)∼10(대단히 보수적) 지수에서 자신이 4∼5.5의 중도성향이라고 답한 것이다. 국민의 여론에 민감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빠르게 균형을 찾아 움직이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극단적 좌·우파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라이트의 행보 역시 그에 맞추지 않으면 국민의 공감을 얻기도 전에 시대착오적인 올드라이트로 떨어질 판이다. 편향성을 비판하면서 또 다른 편향으로 이를 극복할 수는 없다. 역사의 시계가 우에서 좌, 좌에서 우로 움직이면서 상식과 균형이 시대의 징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뉴스 200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