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외교관은 음주운전해도 되나 ?


동문기고 김찬규-외교관은 음주운전해도 되나 ?

작성일 2007-04-25

[시론]외교관은 음주운전해도 되나 ?                   

-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지난 12일 밤 9시50분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중국대사관 승용차 운전자가 음주운전 단속 중이던 경찰관의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 13일 오전 6시20분까지 무려 8시간30분 동안이나 버틴 희한한 사건이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차에는 운전자 외에 3명의 탑승자가 더 있었으며 외교관이라고 주장한 운전자에게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차 문을 안에서 잠가버린 채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은 우리나라 외교부 직원이 나와 운전자의 신원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해 일단 마무리되었다. 운전자는 중국대사관 3등서기관 장모(33)씨임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사건에 대해 중국대사관 측은 “빈 협약에 따라 외교차량에 대한 음주단속은 국제법 위반”이며 “업무수행 중인 외교차량은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에 음주측정에 응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다. 그렇다면 외교차량에 대한 음주단속이 과연 국제법 위반이며 외교차량이 갖는 면책특권으로 해서 외교관은 음주운전을 해도 괜찮을 것인가.


오늘날 외교관과 관련되는 모든 문제는 1961년 4월18일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규율된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모두 이 협약에 가입하고 있지만, 협약 규정의 대부분이 국제관습법을 법전화한 것이기 때문에 이 협약은 협약에의 가입 여부를 막론하고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


이 협약에는 외교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외교관의 신체는 불가침이다. 외교관은 여하한 방법으로도 억류하거나 구금할 수 없다. 접수국은 상응한 경의(敬意)로써 외교관을 다루어야 하며 그의 신체·자유 또는 존엄에 대한 여하한 침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29조) 외교공관의 차량에 대해서는 ‘사절단의 수송수단은 수색·징발·압류 또는 강제집행에서 면제된다’(제22조3)는 규정을 두고 있다.


생각건대 우리 경찰의 조치는 이들 규정의 어느 부분에도 저촉된 것 같지 않다. 그것은 외교관의 신체의 불가침에 위반한 것도 아니고 외교공관 차량의 면제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었다. 외교관에 대해 인정되는 특권과 면제는 문자 그대로 ‘외교관’에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외교관임이 확인되어야 하며, 이에 우리 경찰이 신분증의 제시를 요구했는데도 운전자는 차량의 문을 안에서 잠가 버린 채 8시간30분 동안 저항했다.


협약에는 ‘접수국의 법령을 존중함은 특권과 면제를 향유하는 모든 이의 의무이다. 그들은 또한 접수국의 국내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한다’(제41조1)는 규정이 있다. 적법하고 사리에 맞는 접수국 법 집행관의 요구에 저항한 중국대사관 3등서기관 장모씨의 소행은 접수국 법령 존중 의무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교통법규의 집행 및 이에 따른 음주운전 단속은 보행자와 운전자뿐 아니라 만인의 생명 및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에 여느 주권행사와는 차원이 다른 국가행위이다. 해서 중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국가가 예외없이 이를 실시하고 있으며 단속대상에는 당연히 외교관이 포함되어 있다. 외교관에 특권과 면제가 인정되는 것도 외교관 ‘개인에게 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사절단의 능률적인 임무수행을 확보’(협약 전문)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교차량에 대한 음주단속을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앞으로도 그러한 단속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한 중국대사관 측의 언명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 사건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협약에 ‘접수국은 언제든지, 그리고 이유를 제시함이 없이 사절단의 장 또는 외교직원이 달갑지 않은 자(persona non grata)임을 통고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통고를 받으면 파견국은 그를 소환하거나 임무종료를 시켜야 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지났는데도 조치를 하지 않으면 접수국은 그의 특권 및 면제를 인정치 않을 수 있다.(제9조)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할 것인가는 종합적 판단이 있은 후에 결정되어야 할 일이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일보 200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