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IMF가 세계화 잘못 이끌어


동문기고 정진영-IMF가 세계화 잘못 이끌어

작성일 2007-04-25

[21세기와 고전] IMF가 세계화 잘못 이끌어             

-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

1.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
⑩ 조셉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
 
정진영/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스티글리츠는 예일·프린스턴 등 저명한 대학 교수직을 거쳐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동아시아가 경제위기에 빠진 1997년부터 3년 동안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생존하는 경제학자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 중의 한 명임에 틀림없다. ‘세계화와 그 불만’은 2002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세계은행의 부총재로 재직하며 경험한 개도국들의 발전위기, 구 공산권 국가들의 체제전환문제,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저자의 권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 책이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많이 읽힌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책이 세계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서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화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화의 추진과 관리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 그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것은 좋은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성공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관리되느냐에 있다.” 즉, 세계화의 거버넌스(governance)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IMF(국제통화기금)의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에 따르면 IMF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이익, 그것도 월가와 재무부의 특수이익에 봉사한다. 기금을 낸 액수에 비례하여 투표권을 부여하는 IMF의 지배구조와 회의에 참여하는 재무장관이나 중앙은행 총재들의 시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IMF가 강력히 추진한 것이 바로 자본자유화이다. 이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비판은 혹독하다. “적절한 규제구조를 갖추지 않은 금융시장 자유화는 경제 불안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위기가 도래했을 때, IMF가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재정긴축이나 고금리 처방은 “경제 전체에 사망진단서를 끊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이러한 정책은 채권금융기관들이 빌려준 돈을 수금해 가는데 도움은 주지만, 위기에 빠진 나라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는 IMF의 지배구조를 바꿔 IMF가 투명하고 세계 전체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케인지안답게 위기 시에는 긴축이 아니라 팽창이 바른 처방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제적인 파산법을 만들어 위기가 발생하면 채권금융기관들도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적인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 전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국제기구들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여 세계시장이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세계화의 진척은 어려워진다.

 
조셉 스티글리츠 시장은 불완전하다. 국내시장도 세계시장도 그렇다. 정부도 국제기구도 마찬가지다. 시장실패에 초점을 맞추면 정부의 개입을 옹호하게 되고, 정부실패에 초점을 맞추면 시장만능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스티글리츠는 시장과 정부는 보완적인 관계일 수 있고, 경제적 성취를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그 방향은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지원하는 쪽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동아시아 위기에 대한 IMF식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그리고 개방이면 모든 게 좋다는 세계화 신봉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 출판과 더불어 인기를 끈 이유이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결코 반(反)세계화론자가 아니다. 세계화를 제대로 추진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국내시장과 마찬가지로 세계시장도 훌륭한 거버넌스를 필요로 한다. 나쁜 정부가 한 국가의 경제를 망치듯, 나쁜 국제경제기구들이 세계화를 잘못 인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세계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그런데 이 논란이 종종 세계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것은 비극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세계화를 잘 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념에 대한 강조를 줄이는 한편 실질에 대한 관심을 늘리라”는 스티글리츠의 주문을 모두가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조선일보 2006-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