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강효백 - ‘뉴라이트’는 ‘라이트’다
[기고] ‘뉴라이트’는 ‘라이트’다
- (강효백 / 경희대 교수·법학) -
조나라 사람 공손룡(公孫龍)이 말을 타고 국경을 지날 때다. 성문지기가 “국법에 따라 국경을 통과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공손룡은 “백마는 말이 아니오”라면서 그대로 말을 탄 채 지나갔다.
이 고사가 유명한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백마는 말이 아니다)이다. 공손룡의 논리는 이렇다. 말이라는 것은 모양을 가리키고, 희다는 것은 색깔을 가리키므로, 백마라면 다른 색의 말들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순자(荀子)는 백마를 탔거나 흑마를 탔거나 말을 탔다고 말하기 때문에 백마도 말이라고 하면서 이름만 갖고 사실을 혼란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름하여 순자의 백마흑마론(白馬黑馬論). 여기서 힌트를 얻었을까. 약 2,300년 후에 덩샤오핑(鄧小平)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꺼냈다. 즉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니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허튼 색깔놀음에 빠지지 말고 실사구시 정신으로 경제발전에 일로매진하자고 외쳤다.
21세기 한국 땅에는 때 아닌 백마비마론이 횡행하고 있다. 뉴라이트(New Right:신 우파)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 우파의 개념과 한국에서의 우파 개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례로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우파적 이데올로기인 데 반하여 한국에서는 좌파가 오히려 더 강한 민족주의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한국의 우파는 원래의 라이트(반공주의자)와 요즘 유행하는 뉴라이트(자유주의자)로 나뉜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하기란 이데올로기 전문가도, 자기 자신들도 헷갈린다. 원래의 라이트도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부르고 있거니와 한국의 좌우이념 논쟁의 핵심인 세계화와 통일문제에 대해 라이트와 뉴라이트 모두 (미국 주도의) 세계화와 공고한 한·미동맹을 지지하는 대신 대북유화정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논객을 대표하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도 “뉴라이트 사람들이 뉴라이트의 정치적 이념을 한국어로 ‘신 우파’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면 관념의 유희, 말장난이란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한국에는 진정한 좌파도 우파도 없다. 이 말에는 좌파도 우파도, 중도파도, 레프트·라이트 구분 자체를 혐오하는 ‘좌우혐오파’도 모두 동의한다. 물론 이념의 양 극단에 서지 않는다면 건전한 이념 대결은 사회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현대사에서는 어디까지나 교과서상의 이론일 뿐이었다. 지식인들은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무조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쉽사리 무장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좌우 이념에 대한 명확한 인식조차 없이, 편 가르기 색깔논쟁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러 왔다. 어쩌면 본질은 같으나 이름만 다른 관념용어 하나를 위하여.
뉴라이트는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 전략과 정책의 내용, 우선 순위가 라이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면 더 이상 국민들을 현혹시키지 말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 국민은 조나라의 성문지기처럼 멍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은 산이고 한강은 강이듯, 백마는 말이고 뉴라이트는 라이트일 뿐이다.
[경향신문 2006-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