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섭-한국어가 진짜 어려운 언어인가?


동문기고 김중섭-한국어가 진짜 어려운 언어인가?

작성일 2007-04-02

[독자 칼럼] 한국어가 진짜 어려운 언어인가?

- 김중섭 (국문77/ 29회, 모교 국제교육원 원장) -

** 친숙성·실익 따라 언어 성취도 달라 **
** 접하고 사용할 기회 더 만들어 줘야 **
 
얼마 전 미 국무부가 전 세계에 파견된 외국어 보직자들이 사용하는 69개 언어를 난이도에 따라 ‘세계어, 고난이도 언어, 기타 언어, 초고난이도 언어’ 등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한국어는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등과 함께 초고난이도 언어로 선정됐다.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미약하마나 한국어의 세계화에 힘써 온 필자로선 한국어가 초고난이도 언어에 선정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어와 영어의 발음과 구조의 차이, 문자체계의 생소함 등은 이전부터 미국인이 한국어를, 또 한국인이 영어를 어려워하는 이유로 지적돼 왔다. 구조와 발음의 차이가 언어 습득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 차이가 언어 습득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전부라고 단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특정 기관의 필요에 의해 모든 구성원들이 의무적으로 영어, 중국어, 아랍어, 스와힐리어 4개 중 1개의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여러분들은 어떤 언어를 배우길 희망하겠는가? 대부분 영어나 중국어를 희망할 것이다. 이유는 영어와 중국어가 절대적 난이도에서 다른 2개 언어보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접할 기회가 많아 친숙한 언어이고, 배워 두면 사용할 기회가 많은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언어학자들은 언어에 대한 학습자의 태도가 목적어의 성취도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해 왔다. 언어의 구조, 발음의 차이가 외국어 습득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친숙성과 실용성 등에서 비롯된 목적어에 대한 학습자의 태도 역시 언어 습득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에서 일고 있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한국어가 그 나라 언어와 구조나 발음이 유사해 배우기 쉬운 언어이기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 국무부의 한국어 보직자들이 한국어를 어렵게 생각하는 까닭은 한국어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언어 태도에서 연유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Ⅱ와 일본 대학입시시험인 ‘센터시험’에 한국어가 포함되는 등 한국어를 세계화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언어교육만을 통한 한국어의 보급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한국문화 제공 등을 통해 세계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실익을 다양하게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사용 인구로 세계 12위권인 한국어가 그 과학성과 창조성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200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