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강효백-한국인 유엔 수장과 국제법 교육
[시론] 한국인 유엔 수장과 국제법 교육
[강효백 / 경희대 교수·법학]
10월 13일 반기문 외교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은 우리나라 건국 이래 최대의 경사로 기록될 것이다. 북핵문제와 분단국가 현실, 짧은 유엔가입 역사 등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배출은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우리나라가 국제분쟁을 조정·중재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반 차기 총장은 선출 직후 수락연설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국가 간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을 21세기 유엔의 임무로 밝혔다. 여기에서의 ‘국가 간 시스템’은 다름 아닌 ‘국제법(국제경제법 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법의 대표적 주체인 유엔의 수장(首長)을 배출한 우리나라에서의 국제법의 위상은 어떠한가? 마침 열흘 전 사법고시 2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합격이 ‘가문의 영광’으로 자리매김 되어온 이 시험과목으로는 헌법,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등 7개 국내법 일색이다, 국제법은 1차 시험, 그것도 8개 선택과목 중에 택일하는 과목으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을 뿐이다.
국제법이 이처럼 홀대를 받는 까닭은 우리 법조인 양성시스템이 독일을 모방한 일본의 그것을 다시 벤치마킹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스쿨제(법학전문대학원)를 실시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로스쿨 교과과정에는 국제법 관련 과목 수만 50개가 넘는다. 법대 졸업자에게 법조인 자격을 부여해주는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등 유럽 여러 나라의 법학교육도 국제공법, WTO법, EU법, 국제법리학, 비교법, 외국법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가는 정치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사법고시의 14개 필수과목에 국제공법, 국제경제법, 국제중재법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국제법을 중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강대국과는 달리, 독일은 사법고시 과목에 국제법이 아예 없고 일본은 선택과목 중의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이 두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라는, 유엔에서의 원죄적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독일과 일본의 사법고시에서의 국제법 경시태도를 따라갈 이유가 없다. 세계 191개 회원국을 거느린 최대 국제 조직의 수장을 배출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국제법의 위상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화 추세에 따라 우리 역시 국내법 문제에서 국제법 문제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번의 유엔사무총장 배출을 계기로 국제적 관계를 규율할 인재 양성, 특히, 세계 10위의 교역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국제거래 전문가의 배출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최대 위기국면에 돌입한 북핵문제를 비롯하여 FTA, 독도, 동북공정 등 현안문제는 일반국민들에게도 국제법적 배경지식이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앞으로 이런 문제들은 더욱 늘어갈 것이기 때문에 소수의 전문가뿐 만 아니라 가급적 많은 수의 국민이 잘 알 수 있도록, 국제법을 행정고시를 비롯한 각종 공무원임용시험, 기업체 입사시험에서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여야 할 시점이다.
[조선일보 2006-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