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열 - 비물질적 가치의 소중함


동문기고 이두열 - 비물질적 가치의 소중함

작성일 2006-09-13

비물질적 가치의 소중함

-- 이두열 (건축77/ 32회, 모교 건축대학원 객원교수) --

나는 가끔씩 시간이 날 때 마다 도시의 소음과 복잡함, 빠른 속도감으로부터 벗어나 전통마을을 찾아 나선다.
경주의 양동마을, 진주 부근에 위치한 남사마을 등 아직은 도시의 밀도와는 다른 한적한 풍경, 그리고 아직은 조선시대의 역사적 채취가 마을 전체에 배어있고, 그 마을의 생활상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삶의 모습도 같이 동화되고, 그 계절의 정취를 즐기는 모습 또한 도시의 생활에 젖어버린 사람들에게는 꿈과도 같은 풍경이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추위가 지나가고 다가온 따스한 봄날에 내리는 봄비, 처마 끝의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봄의 기운을 느끼고, 사랑방에서는 문풍지를 통해 들려오는 추위를 에는 듯한 겨울바람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아도 겨울을 감지할 수 있는 생활의 여유가 곳곳에 배어있다.

지구상에서 한국과 일본처럼 자기를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일본은 산업의 발달과 선진화 과정에서 물질적으로 얻은 만큼이나 잃어버린 것이 많다. 개인의 자유는 사회의 조직에 묻혀 버리고, 도시와 시골에서 성장했던 어릴적 기억은 상실되어 버리고, 그 결과 그들 사회의 보편적 현상은 반쪽의 선진화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우리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역사, 소중한 기억,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 등 비물질적 가치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결과, 그들은 지금도 도시와 인간, 물질과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균형이 잡히지 않는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항상 인간적 보편성, 국가와 국가간의 보편성에 대한 결여된 모습으로 그들 사회에서나 국제사회에서 신뢰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이 아시아의 산업발전 시기를 중심으로 선진화 했던 과정을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으며, 아니 오히려 그들 보다 더 빠른 속도로 19세기 산업혁명과도 흡사한 21세기형 정보혁명을 세계화 속에서 주도해 나가고 있다. 배우 배용준의 겨울연가가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과거의 기억을 되돌려준 것처럼,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과거의 기억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일본이 선진화 과정에서 만들어냈던 오류를 우리는 기억하고 또 잘 분석하여 우리 사회가 물질과 정신이 항상 균형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회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정치, 사회, 경제, 역사적 가치의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인식할 때에는 반드시 그 시대적 환경으로 돌아가 그것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이 시간대에 서서 이시간대의 인식을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를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자기 편향적 사고로 모든 인식을 고정시키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일본의 정치가들이 신사참배를 '애국적이다'라고 주장하며, 내정간섭을 운운하는 등 그들의 과거의 역사를 뉘우치지 못하는 편향된 일본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혼돈을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합리성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법이 있고 그것을 집행하는데 누구는 법대로, 누구는 봐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사회는 원칙과 합리성으로 움직여져야 하며 그것을 집행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따스함이 배어야 한다.

21세기, 세계의 정보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의 도시는 이러한 선진 기술과 더불어 20세기 산업화의 발달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도시의 아름다운 기억들과 사람이 공존하는 환경, 즉 물질과 비물질적 세계가 공존하고 함께 병행 발전하는 그러한 도시는 구축될 수 없는 것인가. 도시나 농촌이나 어촌이나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똑 같은 모양의 아파트, 상가, 가로공간 등이 아니라 지역의 특화된 모습, 우리의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 회상할 수 있는 어릴적 꿈과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감성의 도시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 경인일보 2006년 5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