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 '혁신과 평등' 두 토끼 잡기


동문기고 김중수 - '혁신과 평등' 두 토끼 잡기

작성일 2006-09-11
[다산칼럼] '혁신과 평등' 두 토끼 잡기

김중수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 '혁신'과 '평등'이다. 혁신의 기치를 앞세우면서 동시에 평등주의에 충실하고자 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혁신이 필요하고 사회안정을 위해 평등이 필요하다는 원론에는 이견을 달기 어렵다. 그러나 혁신과 평등은 모든 경제사회활동의 결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인데,지금 우리 사회는 이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인위적으로 달성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혁신은 평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두 개념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가? 정부부처마다 혁신담당관이 생겼다. 개발연대에는 물가정책 담당 부서를 둬 물가 통제에 성공했다. 이 경험을 살려 혁신담당관을 둬 혁신을 성취하고자 한 것일까? 지금은 물가 담당부서가 사라졌다.

물가는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시장에서 모든 경제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내생변수이다. 따라서 물가통제는 권위주의시대의 산물이었으며 시장경제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에 사라진 것이다.

혁신은 물가와는 성격이 다른 변수인가? 혁신도 경쟁적 환경이 조성되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내생변수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도처에서 혁신에 반하는 평등지향적 정책이 수행되고 있다. 국가경쟁력의 근간인 교육과 연구분야에 경쟁보다는 평등이 강조되고 있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수월성을 추구해야 할 교육과 연구분야의 환경이 비경쟁적이란 점이 특히 우려된다. 경쟁지향적 교육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는 연유가 경쟁은 불평등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평등집착적 사고에 기인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유학을 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립형사립학교는 학비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가난한 학생들은 선택할 수 없으므로,따라서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선 여유 있는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목소리 큰 교육집단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바람직한 교육집단이라면 학업능력은 우수하나 가난 때문에 이러한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해주는 길을 찾아 양질의 교육기회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쟁을 조장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경쟁을 관리할 능력이 없거나 이것이 번거로워 회피하기 때문은 아닐까? 잘못된 정책을 도입한 책임은 지난 정부에 있겠지만 한 나라의 경쟁력을 대표할 국책연구사업 선정에서 중복연구를 줄인다는 명분아래 각 연구소 업무영역에 칸막이를 쳐 놓고,그 결과 경쟁을 도외시하는 관행이 정착되게 한 것이 대표적 실패사례이다.

평등이 한번 정착되면 이를 경쟁적 체제로 개혁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힘든 일이다. 비경쟁적 연구환경에서 저질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정책이 집행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의 사회적 손실은 누가 부담하고 있는가?

그러면 혁신과 평등은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가치인가? 그렇지는 않다. 혁신과 평등을 경제활동의 결과로 얻게 되는 간접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지대추구(地代追求) 행위를 없앰으로써 혁신과 평등의 두 마리 토끼를 결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대는 기회비용을 초과해 얻는 수익을 뜻하며 이는 정부의 인허가와 시장 간섭,그리고 각종 규제 때문에 발생한다. 경쟁이 도입되지 않고 시장경제가 뿌리내리지 않은 곳에 지대가 창출되는 것은 자명하다.

평등을 앞세우는 것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 경쟁제약적 정책은 혁신을 저해할 뿐 아니라 평등마저도 가져오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경쟁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지대발생요인을 제거함으로써 혁신과 평등을 함께 얻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지대 발생요인을 찾아낼 분석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규제개혁 차원에서 경쟁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혁신과 평등을 얻게 되는 첩경임을 이해하는 유능한 정부가 돼주길 기대한다.

- 한국경제 2006년 5월 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