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재욱-차기 한국은행 총재에게 바란다
< 차기 한국은행 총재에게 바란다 >
---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 교수) ---
새 한국은행 총재로 이성태 현 부총재가 내정됐다.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의 수장이 될 새 총재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통화정책은 시장의 안정을 목표로 해야 한다. 즉, 통화정책으로 시장이 교란돼서는 안된다. 시장을 교란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통화정책의 초점을 화폐가치의 안정, 즉 물가안정에 둬야 한다. 화폐가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시장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화폐가치가 불안정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제공한 재화와 용역의 대가로 주는 화폐를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미래의 구매력을 위해 화폐를 보유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히 교환활동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생산활동도 감소한다.
다음으로, 시장을 교란시키지 않기 위해서 통화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금리를 올리겠다고 했다가 실제로 올리지 않거나, 혹은 금리를 내리겠다고 했다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투자를 매우 위험하게 만들어 투자가 줄어든다. 또한 저축에 따른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저축도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돈을 빌리려는 사람도 돈을 빌려 주는 사람도 줄어들어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그에 따라 생산활동 역시 줄게 된다.
지난 수년간 한은의 행태를 볼 때 과연 한은이 이러한 목표에 충실했는지 의심스럽다. 한은은 물가안정보다는 경기조절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수행해온 경향이 있다. 그것은 한은이 경기조절을 위해 금리를 인상 또는 인하하겠다는 발언을 자주 했으며 그런 발언이 나온 시점에 금통위가 콜금리를 공식적으로 인상 또는 인하한 경우가 많았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박승 총재의 재임중 정책금리에 대한 언급이 52회였고, 전철환 전 총재는 31회였다. 또, 박 총재의 발언은 종종 금통위의 공식적인 발표와 다른 경우가 있어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통화정책의 목표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평소 소신과 다르다고 알려진 내용을 부적절하게 언급함으로써 한은의 신뢰성을 훼손한 면이 적지 않았다.
한은은 근원 인플레이션율을 3% 미만으로 유지한 점을 들어 지금까지의 통화정책이 비교적 성공했다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근원 물가는 곡물 이외의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소비자물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현실 적합성이 적다.
뿐만 아니라 통화정책을 수행할 때 인플레이션율보다 더 주의해야 할 점은 통화 증가로 유발되는 상대가격의 변화이다. 사실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은 모든 재화의 물가 상승의 평균 개념이다. 인플레이션율이 3%라고 했을 때 그것은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격이 똑같이 3% 상승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가격이 3% 이상 오른 것도 있고 오히려 떨어진 것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가격의 변화로 부문 간 소득 및 부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통화정책을 오랜 기간 수행한 결과 유동성 과잉이 초래됐다. 그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여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부(富)가 증가해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부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저금리 정책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여 개인 신용불량자가 2004년에는 40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로 인해 금융권의 부실 여신이 증가, 카드사를 비롯한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당시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정했었다. 이렇듯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춘 통화정책은 경기침체를 치유하지 못한 채 시장에 많은 혼란과 왜곡만을 초래했다.
새 한은 총재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 앞으로 통화정책의 목표를 시장의 안정화에 두기 바란다. 화폐가치 안정에 초점을 맞춰 일관성 있게 추진하며, 시장에 혼란을 주는 발언을 삼가고, 상대가격 변동에 의한 부의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줄 것을 당부한다.
<문화일보-2006.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