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룡-'점술' 문화와 우리사회


동문기고 송재룡-'점술' 문화와 우리사회

작성일 2006-03-23

'점술' 문화와 우리사회
---- 송 재 룡 (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 ----
 
현재 우리나라 점(역)술인의 숫자는 대략 30만~ 40만명 정도이며, 그 시장은 연 2조~3조원 규모로 측정된다. 이중에는 연간 수억, 수십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형 점집들이 적지 않으며, 잘 나가는 온라인 점집들도 수백 개에 이른다. 그간 근대화의 서슬에 밀려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점집들이 이제는 한국적 근대화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강남 지역에 이른바 '점술 밸리'를 형성해 가고 있다. 게다가 대학과 같은 제도권 교육 영역에서도 '실용학문'의 바람을 타고 점술이 당당히 학과 단위의 교육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어느 나라이건 점술은 있지만 우리만큼 점보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은 없을 성 싶다. 이제는 신년운수만을 보기 위해 점집을 찾지 않는다. 일년 사시사철 언제든지 인생문제를 상담하고, 운세를 풀거나 인생역전을 위해 점집을 찾는다. 그리고 고객도 다변화해 과거 주고객이던 주부에서 공무원이나 전문직 종사자들로, 중년에서 대학생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선거철이면 기성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이 점술가를 찾는다. 좀 된 얘기이지만, 과거 어느 집권당의 거물급 정치인이 헬기를 동원해 지방의 유명 역술가를 찾아가 점을 본 것이 알려져 세간에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곧 다가올 5·31 지방선거는 점술가들에게는 특수 중의 특수다. 며칠 전에는 대표적인 합리적 전문가 집단인 대검의 '검찰 혁신아카데미'에서 유명 점술인을 초청해 강의를 경청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점술에 몰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점(역)술은 前산업 사회의 해석학 체계, 곧 불확실한 현실 문제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풀어가는 해석 체계였다. 하지만 고도의 과학기술과 정보 네트워크에 기반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토록 점술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신뢰도가 낮아 공정한 게임의 원칙이 작동되지 않고 편법과 부정의가 통용되는 사회며, 복지 차원에서도 사회적 안전망이나 지지체계의 수준이 낮아 개인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과 위험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점술에의 집착 때문에 빚어진 국가 사회적 파탄은 실로 심각했다. 대표적인 예가 왜군 세력을 파악하기 위해 선조가 보낸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서가 합리적 관찰과 분석에 주력하기 보다는 그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상이나 사주, 체상과 걸음걸이 등과 같은 점술적 요인들에 대한 분석에 의존함으로써 침략에 대비한 '합리적' 전략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파국의 임진란을 맞이한 조선 정부의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우리 역사상 이처럼 점술의 해석학에 의존한 국가 단위의 의사결정의 예가 결코 적지 않았으리라 본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이 점술의 논리에는 사회성과 역사성이 없다는 점이다. 점술의 해석학에는 한 개인의 삶을 값지게 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도덕적 심오함이나 질적 가치판단에 대한 언어가 없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재상이 될 관상'이라거나 또는 '관운이나 재운을 타고난 사주'라면, 예컨대 그가 총칼을 앞세운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되든, 비열한 불법 수단을 써서 관직에 오르든, 또는 밀수나 조직폭력을 통해 갑부가 되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점술 문화'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인 '도덕적 해이' 현상을 오히려 조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심각성은 이 '점술 문화'가 '합리적’ 관찰과 분석의 태도가 개인의 덕스러움(virtues)으로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에토스를 형성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요행과 파행으로 움직여 나간다는 자조적이고 퇴행적인 공동체관을 낳게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입후보자들 중에 혹시 점술가를 찾아 볼 요량인 분들이 있다면 한번 이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심이 어떨지.

( 경인일보 3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