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진정으로 재미있는 삶은 ?
가끔 주위사람들로부터 듣는 소리가 하나 있다. “선생님은 무슨 재미로 사세요?”다. 세상을 사는데 꼭 재미로만 사는 게 아닌데도 왜 사람들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정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만약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진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흔한 말로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지를 생각해보았다.
대충 춤을 추고, 노래하고, 또 돈을 많이 소유하고, 풀장이 있는 거대한 저택에서 외제 대형차를 가지고 술 마시고, 이성과 즐기며,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등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재미는 본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함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재미는 적당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더 욕심을 내면서 집착을 하게 되면 욕망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욕망이 도를 넘다보면 설령 행복을 얻는다 해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욕망이란 속물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욕망의 항아리는 밑 빠진 독항아리처럼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갈증이 더 심해지며 마음을 괴롭힌다. 마치 심한 갈증을 느낄 때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을 더 느끼게 된다.
또한 욕망이란 우리에겐 때로는 괴로움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욕망은 집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되면 그 자체가 바로 괴로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설사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해도 그 행복은 잠깐일 뿐, 얻은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게 되고 불안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한 지인에게 물었다. “부자의 기준을 어디에 두나요?” 그랬더니 “현재 자신의 소유에 대해 만족해 하는 사람” 이라고 즉답을 한다. 그 지인의 말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많이 가졌어도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한다면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 있고 적게 가졌더라도 만족할 줄 알면 그는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는 것이리라.
성인으로 추앙받는 붓다(석가모니)는 소유지족(小裕知足) 즉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함을 알라’고 중생들을 향해 말씀을 했다. 따라서 욕망을 충족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욕망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평생 욕망을 채운다 해도 그 욕망은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하며 만족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욕망의 무거운 짐을 과감하게 벗어 던질 줄 알아야 한다.
한 예로 산행을 하면서 배낭에 가득 들어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면 점점 몸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욕망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내려놓음으로서 얻어진 행복은 욕망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진짜 행복인 것이다. 욕망의 늪에서 벗어난 사람은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고 분명하다.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을 흥분시키는 감각적 쾌락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마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욕망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눈앞의 작은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현명하게 이를 대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지혜는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게 되는 많은 문제에 직면해 현명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지혜의 힘으로 욕망의 집념을 이해하되 그 같은 욕망에서 벗어난 삶을 살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상의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겸손하고 남을 존중하는 세상, 자신과 남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세상,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 땅위에서 누릴 수 있다. 부질없는 욕망을 좇으며 의미 없는 인생을 살기보다는 부족하지만 지혜로운 마음으로 살면서 이런 아름다운 세상과 만나는 삶은 항상 기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또 다른 세상 재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의 주검을 끌어안고서 한 여인이 절규한다. “부처님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붓다는 그 여인에게 말한다.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찾아가서 겨자씨 세 개를 얻어오너라. 그러면 네 소원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온 동네를 다 돌아다니며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찾아 헤매었지만 그런 집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부자나 빈자나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여인은 결국 자식의 죽음에 대해 수용하는 마음이 된 것이다. 여인이 깨달은 것처럼 우리도 역시 그 같은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언제인가는 그 같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욕망도, 집착도 다 무익한 것이다. 그런 욕망을 내려놓고 적은 것에 만족해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면 진정 재미있는 삶이 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