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토해진 과거 삼킬 슬픈 미래


동문기고 안호원칼럼-토해진 과거 삼킬 슬픈 미래

작성일 2012-01-12
새해 들어서 신년교례회다 뭐다 해서 각종 모임에 참석하면서 묘한 내 마음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모임이 있기 전 그 모임에서 만날 지우와 동문들과 벌어질 상황에 대해 어떤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를 갖고 참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모임이 끝나고 귀가를 할 때면 뿌듯한 마음 보다는 늘 미묘한 허탈감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모이고 흩어지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지는가 하면 왜 결과가 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를 걸어야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난 매번 새로운 모임에 대해 똑같은 설렘을 갖고 참석하고, 그리고 또다시 실망하는 일을 무수히 반복을 하게 된다.

배고플 때는 무엇을 먹든 다 맛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배가 부를 때면 산해진미의 음식이 상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차려져 있다 해도 관심도 없고 또 거들떠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일단 뱃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는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이라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된다.

비단 이는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의 일도 그렇다. 좋은 음식을 누군가 먹고 다시 토해 내면 악취가 풍기게 마련이고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뱃속에 들어간 그런 음식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모두에게 기억조차 없는 2008년도 전당대회 때 돌린 돈 봉투사건에 휘말려 휘청거리고 있다. 그게 한 현역의원에 의해 터졌다. 당연히 터져야 할 것이 터졌고 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휘슬 블루어’(내부 고발자) 역할을 한 그 의원을 보는 시선은 그리 꼽지만은 아닌 것 같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옛 속담처럼 그 당시 돈을 받았을 때는 조용히 있다 몇 년이 지난, 더구나 자신의 지역구에 박희태 의장의 먼 친척이자 자신의 고향후배인 전직 구청장이 출마하려는 시점에서 뒤늦은 폭로를 해야 했느냐 하는 것이다. 또 말하기 좋아하는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오래 전부터 관행적인 일을 돈키호테형(形) 성격의 의원이 어떤 파장이라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에서 아예 작심을 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 같은 바람은 비단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까지도 그 불똥이 튀면서 초긴장 상태로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이 세상에 털어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말처럼 이 같은 현상은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판에서 어느 누가 돈 봉투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돈 봉투 사건에 대한 정치권 인사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고 보면 맞는다는 결론이다. 그만큼 돈 봉투는 만연해있고 또 제거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뿌리를 내려 고질적으로 엉키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시스템은 여야 불문하고 돈 봉투 없이 굴러갈 수 없기 때문이란다. 벌써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이 같은 악습을 그 누구도 지적하지도 개선할 의지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식당 간판이 바뀌면 뭣하나 주인도, 주방장도, 직원도 그대로인데….

남을 탓하며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욕심을 버리면 안 될까? 결국 돈 봉투 사건도 지나 친 과욕에서 비롯됐다. 불가에서는 ‘재물(財物)과 색(色)의 화(禍)는 독사의 독보다 더 심하다’ 고 가르친다. 그러나 재물과 색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남근(男根)을 자르고 사는 내시나 80세가 넘은 노인에게도 아직 색심은 살아있다고 한다. 단지 육체가 따르지 못하거나 일부러 접하지 않을 뿐이다.

국민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선량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네 정치가들의 최근 형태를 보면서 더욱 회의감과 함께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단 맛을 좇아 군주를 배반하고 변심하는 가운데 권좌를 지키기 위한 권모술수를 일삼고 헐뜯는 추태를 벌리고 있고 그 습관을 세습하며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옛 말에 이르기를 ‘나라에 올바른 한 사람의 인물만 있어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고 충고하고 있다. 즉 대저 나라를 망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망할 때를 당해 어질고 진실된 사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적 달성(공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부메랑이 되어 언제인가는 자신의 발목을 되잡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배고픔은 참으면서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우리네 풍토가 하루속히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한다.

아무래도 흑룡의 해인 임진년,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는 우리에게 한 단계 높은 성숙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의장실을 나르는 의원, 의사당 문을 부수는 폭력 의원, 최루탄을 터뜨리며 영웅 행세를 하는 의원, 연예인 출신으로 무식하리 만치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의원 등은 가려서 뽑자.

며칠 전 연세대총동문회 신년교례회에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건배제의를 하면서 “지난해는 정치, 경제, 특히 안보위기의 한 해였고 이 사회는 썩을 대로 썩은 사회가 되어버렸다” 며 “흔히 말하는 진리란 양심과 정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는 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며 모두가 정신 차리라는 뼈아픈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언제까지 우리 정치사에 이런 현상이 지속될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래도 배가 너무 부른 것 같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