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하여가


동문기고 안호원칼럼-하여가

작성일 2011-10-27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고려 마지막 기운이 느껴지던 어느 날 이방원이 정몽주와 술상을 마주 한 채 고려왕조에 대한 절개를 굽히고 자신의 뜻에 동참해줄 것을 바라는 솔직 담백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한 시(詩)이다. 그 답변으로 한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가 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노장(老將)이 고려 왕조에 대한 일편단심의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결국 선죽교에서 반대파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또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꾀하며 정적인 김종서 장군을 참살한다. 정치가 도대체 어떤 맛이 있기에 불나비가 저 죽을 줄 모르고 불에 덤벼드는 것처럼 피를 뿌리면서까지 쟁취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는 하지 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그 비극적 자살 두 달 전 인터넷에 직접 올린 글이다. 노무현은 그 이유를 “이웃과 공동체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그 글은 회한과 상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륜과 경고를 표출한다. 시민운동가를 자처하며 인권변호사이기도 한 박원순이 안 교수의 바람을 등에 업고 드디어 정치 일선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희망과 변화의 새로운 문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두어 달에 걸친 전쟁을 치루고 서울의 수장이 되었다.

서울시장은 예산 21조원을 다룬다. 시장의 리더십은 공무원 관리 능력이다. 따라서 시정(市政)의 성패는 공무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다. 그렇지 못하면 결과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 한나라당에 대해 정말 짜증이 나고 화가 치민다.

얼마나 국민들이 실망하고 변화를 바랬으면 좌편향 시민단체를 이끌었고 대기업을 때리며 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반미단체에 나눠주고 심지어는 최근에 1천만 원 상당의 등산복을 지원 받기도 했고 특히 천안 함 피격과 관련, “북한을 잘 관리하고 평화를 구축해야 함에도 李(명박) 정부 들어서 북한을 자극해 억울하게 장병들이 수장(水葬)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유엔에까지 편지를 보낸 단체에 소속 되어 있는 등 좌익의 상투적 주장을 연상케 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박원순은 반공국가인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2002년 효순, 미순 양 미군 장갑차 치사 사건의 반미 촛불 시위에도 참여 했던 인물로서 포스코와 풀무원 등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역임한 바 있는 인물이다. 당연히 후보자로서 검증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그 같은 검증공세가 네거티브로 호도되면서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 비극의 역사를 초래 했다.

중국 문화 혁명 때,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 이 홍위병을 정치적으로 잘 이용해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잡듯 5%에 불과했던 무소속 박원순이 안철수 바람을 등에 업고 참호에 겹겹이 포진한 후원군(홍위병)과 일당백의 진보명사들과 진보단체, 그리고 야당들과 화려한 시민연합군을 형성하고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한나라당 서울 공화국을 집중공격 마침내는 그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 역시 대단한 수단꾼이다.

그러나 갈채는 여기까지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불행하게도 검증을 받아야 할 행적들이 시민연합군과 홍위병들로 인해 네거티브로 왜곡되면서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다. 이제 서울 시장이 되었기에 그의 국가관과 안보관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의구심을 풀어야 한다. 특히 그의 많은 저서들 대부분이 이념논쟁과 거리가 먼 합리적 진보로 비춰지지만 자세히 보면 좌파적 역사관이 담겨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인권변호사임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굶주림과 공포의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를 냉혹히 비판하면서도 북한 리더십에는 매우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세간에 모든 부분들이 서울 수장이 되었기에 더욱 철저하고 명백한 검증을 통해 불식시키고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장인 공직자의 진면목을 아는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이자 의무다. 그래서 더욱 더 철저한 이데올로기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맡길 곳이 없다 해도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길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이번 선거를 통해서 특이한 것은 보수와 진보, 지역 간의 대립도 모두 사라지고 세대 간의 갈등을 이루면서 기형적인 사회로 조장 했다는 것이다. 노파심이겠지만 또 하나의 걱정은 지금 불고 있는 이 변화의 황색바람이 어디에서 멈추고 언제까지 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에 패배한 한나라당은 물론 시민단체에 끌려 다니는 민주당도 재편의 거친 바람이 소용돌이 칠 것이다. 이와 함께 홍위병들과 제야 단체 및 각 정당 연합군들이 저마다 공을 내세우며 지분을 요구 할 것이 분명한데 소통의 달인인 박원순이 어떻게 지혜롭게 처리하며 바람을 잠재울 것인지 자뭇 궁금하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영의정이 임금에게 절대로 가까이 있는 사람마저도 믿지 말라고 하자 임금이 당연히 믿지 말아야 한다. 믿으면 사실 법이 필요 없다고 하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이번 보선을 보고 느낀 것이 또 하나 있다. 모두가 말하는 정의(正義)의 정의(定意)다. 내 정의가 다르고 네 정의가 다르다면 ‘정의의 진정한 정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진정한 정의는 네 편, 내 편을 떠나 모두에게 공정함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의 정의와 진리는 힘(집단)의 논리가 뒷받침 되고 있는 슬픈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곽노현에 이어 박원순이 서울 수장이 되면서 학생들은 차별 없이 무상급식을 하게 되었지만 설득하기 힘든 노친네 선거일에 투표하지 못하도록 여행을 보내겠다는 트워터 이용자에게 꾸중은 커녕 ‘진짜 효자’라고 칭찬하며 노인을 폄하한 멘토 조국 교수로 인해 앞으로 서울 노친네들이 구박 받을 것이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무심한 하늘, 어떤 황색바람이 어디서부터 언제까지 불어올지 걱정이다. 어차피 바람은 불어와 흘러가는 것. 이방원의 시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자업자득 인 것을….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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