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 칼럼- 일체유심조


동문기고 안호원 칼럼- 일체유심조

작성일 2011-09-29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중국 송나라 때, 주자의 스승인 정자 형제가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났다. 배가 뒤집혀질 듯 하자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온 통 난리가 났지만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사람은 정자 형제와 그 맞은편에 앉은 누더기 스님 등 세 사람뿐이었다.

뒤집힐 듯, 뒤집힐 듯하던 배가 무사히 항구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후 동생이 형에게 물었다. “형님, 우리가 탄 배가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려 할 때 몸은 꼼짝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제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 했었는데 형님의 그 때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형이 대답하기를 “나도 아우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불안하여 그를 가라앉히려고 무척이나 애썼다네.” 그 때 마침 누더기 스님이 지나가자 동생이 물었다.

“스님, 스님이 배를 타고 오시던 중 큰 풍랑을 만나 모두 난리를 피우는데도 스님은 가만히 앉아 계셨는데 그 때 스님의 마음은 어떠하셨는지요?” 잠시 형제를 바라보던 스님이 대답하시길 “나는 배를 탄 적도 없고 또 풍랑 같은 것도 만난 적이 없소.” 하면서 지나갔다. 이 말에 담겨있는 의미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배가 무사히 항구에 도착한 것이 배를 탄 적도, 풍랑을 만난 적도 없다는 누더기 스님의 묵상 덕이라고 생각해보지 않겠는가.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그런 상황에서 정자 형제의 경지 정도까지는 이룰 수 있다.

풍랑, 혹은 죽음이라는 경계에 직면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면서도 서로 다른 또 한편으로는 그 두려운 마음을 자신이 믿는 어떤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 다스리려고 애쓰는 정도, 그러면서도 쓸데없이 아우성치지 않는 것은 나(자아 自我)를 다스리지 못하고는 어떤 경계 또한 다스릴 수 없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풍랑의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던 배가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 배에 물이 가득차면서 사람들이 온통 난리를 피우는데도 오직 한 분 예수님만 주무시고 계셨다.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잔뼈가 굳은 그들이지만 뜻밖에 만난 광풍에, 삶의 희망마저 포기할 정도가 되면서 마침내 아무 힘도 없을 것 같은 예수님을 깨운다.

잠에서 깬 예수님이 즉시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무서워하고 믿음이 없느냐고 심한 질책을 하셨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누구 덕에 무사한지 조차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도 없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면서 ‘건너편 지방으로 가자’고 하신 말씀을 저들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 속담에 “인간은 고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두려워했던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레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한 고난보다 더 많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 같은 광풍을 만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이든, 자녀의 교육문제이던, 건강의 문제이던, 그 종류는 각기 다양하게 다르겠지만 살다보면 광풍 같은 어렵고 두려운 일들이 예고도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며 또 우리에게 이 같은 고통을 느껴야만 하는가? 그것은 우리 인간을 강인한 인물로 만들기 위한 훈련이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역기를 들고 아령을 드는 등, 힘을 써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힘이 들고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참아내야 한다. 그런 힘마저 쓰지 않는다면 멋있는 근육이 생길 수가 없다. 우리 삶도 이와 마찬가지의 원리다.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역사의 위대한 인물에게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광야학교 출신이라는 점이다. 인생의 상당한 부분을 광야에 버려져서 흘러 보냈다는 것이다. 모세도, 다윗도, 세례요한도, 바울도,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까지도 마찬가지다. 정말 위대한 인물들은 이 광풍과 같은 고된 훈련을 통해 강인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마음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생각의 방향, 긍정적인 마인드, 높은 꿈, 끝없는 도전, 이런 모든 것들이 다 마음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누더기 스님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랬다.

두려움이 없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믿음이 있으면 된다. 그래서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물러섬 없이 정진한다면 우리 모두가 ‘내’가 없어져 ‘너’(경계)마저 사라진 경지에서 무심(無心)으로 사는 멋진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