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 - 경계획정과 영유권은 별개다


동문기고 김찬규 - 경계획정과 영유권은 별개다

작성일 2006-09-20

[특별기고―김찬규] 경계획정과 영유권은 별개다

--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 --

12∼13일 도쿄에서 동해쪽 한·일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획정에 관한 외교교섭이 열린다. 한·일 간 EEZ 경계획정에 관한 외교교섭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모두 4차례 있었지만 이번 교섭은 지난 4월 하순의 ‘독도 사태’가 직접적 동기로 된 것이어서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거 4차례의 교섭에서 우리 정부가 울릉도와 일본 섬 오키(隱岐)의 중간선을 양국 간 EEZ 경계선으로 제안한 데 대해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의 중간선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태도를 바꿔 독도와 오키의 중간선을 경계선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함으로써 교섭은 EEZ 경계획정보다는 독도의 영유권 문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유엔 해양법협약상 EEZ 경계획정에 대해서는 대륙붕 경계획정의 경우와 같이 ‘형평한 해결을 달성하기 위해 국제법에 의거한 합의에 의해 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제74조1·제83조1). 이것은 EEZ 및 대륙붕 경계획정의 방법과 목적을 규정한 것으로 당사국 간의 ‘합의가 그 방법이고 형평한 해결’이고 목적임을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교섭에서는 양국이 똑같이 독도가 자국령임을 전제로 독도를 기점으로 주장을 펴게 돼 있으니 합의에 이를 리 없다. 회담의 목적과는 달리 엉뚱하게 독도 영유권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동해쪽 한·일 EEZ 경계획정에서 독도를 기점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도 영유권에 훼손이 있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오는 것인데 과연 이러한 우려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게 국제법적 정답이다. 왜냐하면 섬의 영유권 문제와 해양경계의 획정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며 후자에서는 오로지 ‘형평한 해결’만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해양경계 획정 문제에 관해서는 수많은 국제판례가 있었다. 해양경계 획정에서 형평한 해결을 달성하기 위해 국제판례는 섬에 대해 완전한 효과를 인정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반분(半分) 효과,3분의 1 효과 등 부분 효과만이 인정된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는 아무런 효과도 인정되지 않는,다시 말해 섬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된 경우도 없지 않았다.

1977년 6월30일 영국과 프랑스 간의 대륙붕 경계획정에 관한 중재재판 판결이 있었다. 프랑스 영토로 둘러싸인 그랑빌 만(녇)내에 있는 영국령 채널 제도 (Channel Islands)에 대해 판결은 둘레 12해리의 어업무역만을 인정하는 위요지(圍繞地) 방식을 절충했다.

여기서 12해리 어업수역만을 인정했다는 것은 채널 제도에 대해 대륙붕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채널 제도는 영국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이 약 49해리,전체 면적은 195㎢의 크기였다. 판결 당시에는 약 13만명의 주민이 살던 섬으로 독자적인 의회,재판소,행정조직,법 제도 및 재정을 가진 곳이다. 이 채널 제도에 대해 12해리 어업수역만이 인정된 것은 오로지 형평한 해결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섬의 영유권과 해양경계 획정은 전혀 별개의 문제며 한·일 간 해양경계 획정에서 독도가 기점으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영유권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제법적 판단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독도에 집착하는 것은 국민 정서를 의식한 결과가 아니면 협상전략의 일단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찍이 덩샤오핑은 댜오위타오(釣魚鳥·일본명 센카쿠)에 대한 중·일 간 분쟁의 해결을 다음 세대에 맡기고 지금은 해양의 평화적 이용에 나서라고 제안한 바 있다. 한·일 간에는 이러한 슬기가 개재할 여지가 없는 것인지,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국민일보 2006년 6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