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 - ‘호랑이 담뱃대’가 지은 원두막


동문기고 도정일 - ‘호랑이 담뱃대’가 지은 원두막

작성일 2006-09-20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 ‘호랑이 담뱃대’가 지은 원두막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제천 기적의 도서관에 가면 ‘호랑이 담뱃대’라는 이름의 할아버지 할머니 자원봉사단이 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에게 호랑이 담배 먹던 때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은 사람들의 모임이어서 이름도 ‘호랑이 담뱃대’다. 회원은 여남은 명, 대개 7순을 넘긴 제천의 어르신네들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먹고 자란다. 그들에게는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이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전통적 ‘스토리텔러’들을 대체해버린 시대에 제천에서만은 동네 노인들이 나서서 이야기꾼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한 세대가 듣고 자란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녹음된 기계소리 아닌 사람의 숨결로 전해주고 들려준다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잃고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간신히 알게 된 보물단지의 하나다. ‘호랑이 담뱃대’는 그래서 제천의 ‘명품’이다. 그 명품은 아이들에게도 시쳇말로 ‘인기 짱’이라 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이야기 하나 들려주세요”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호랑이 담뱃대’가 호랑이 담배 먹던 때의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작년 유월, 이야기꾼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것은 6.25 전쟁 이야기다. 윗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세대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전수’한 것이다. 그 경험담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 슬픔과 두려움,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요즘 아이들이 몰두하는 ‘게임’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게임에서 살고 죽는 것은 놀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삶의 경험에서 죽음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그때 나무 위에 숨었던 내 친구가 총 맞아 죽었지 뭐야. 살았더라면,” 하고 이야기꾼은 잠시 말을 끊는다. 살았더라면? 살았더라면 그 사람도 호랑이 담뱃대가 되어 “여기 늬네들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꺼인디, 그렇지?”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지금 여기에 없는 자의 영원한 사라짐을 ‘상실’로 경험하게 한다.

주먹밥, 보리 개떡, 쑥털털이 같은 것도 호랑이 담뱃대가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도서관 아이들에게 나눠 먹인 경험 전수의 소품들이다. “할아버지, 보리 개떡이 뭐야?”라고 한 아이가 물었을지 모른다. “할머니, 주먹밥 맛있었어요?”하고 질문한 다섯 살짜리 소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호랑이 담뱃대 노인들은 젊은 날 그들이 의존했던 연명의 수단들을 지금 아이들에게도 맛보이지 않고서는 전쟁의 경험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먹밥이 뭐고 개떡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을 제천 바닥에 그대로 두고서는 제천이 절대로 온전한 제천일 수 없다며 불안해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경험거리를 만들어주는 일도 호랑이 담뱃대 활동의 하나다. 이 비슷한 일이 아주 최근에도 있었다는 소식이다. 한 아이가 책 보다가 “할아버지, 원두막이 뭐야?”라고 호랑이 담뱃대 할아비에게 물어온 것이다. 그리고 ‘원두막 소동’이 벌어진다.

원두막 소동? 사실은 원두막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호랑이 담뱃대가 생각해낸 ‘원두막 건립 프로젝트’다. 요 녀석들이 글쎄 원두막도 모르다니, 큰일이구나, 큰일. 그 ‘큰일’을 당한 호랑이 담뱃대 회원들은 도서관 앞마당에 원두막 한 채를 지어주기로 하고 도서관장을 찾아 상의한다. “이봐요 관장, 원두막이 뭐냐고 애들이 묻는데 하나 지어줘야 하잖아?” 도서관장 최진봉은 시청 산림과로 어디로 전화를 넣어 나무 구할 방도를 궁리한다. 그리고 산으로 간다. 이게 원두막 사건의 발단이고 도서관장이 지게 지고 나무하러 산에 가게 된 사연이다. 분홍색 셔츠를 곱게 차려입고 다니는 도서관 사서 윤사수 씨도 그날은 별 수 없이 관장을 따라 지게 지고 산으로 가지 않았을까? 거기 도서관 종사자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나는 지금 제천의 한 도서관을 칭찬하기 위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오로지 정보사냥만을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얼뜨기 정보주의자, 빠르고 쉽게 ‘정보지식’을 습득하기만 하면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가당찮은 아이티(IT) 기술주의자들이 있다. 이 종류의 기술주의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우리 시대다. 그들은 자신만만하다. 세 개의 힘센 우상들을 그들이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우상, 시장의 우상, 소비오락의 우상이 그 신판 삼위일체의 신들이다. 우상교회의 신도들은 이 새로운 신들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기술의 신은 모든 난제를 풀고 시장의 신은 모든 주림을 해결할 것이며 소비오락의 신은 모든 불행을 제거하리라.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사회가 그 우상교회의 동굴로 넋 놓고 깊이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 우상의 시대에 제천 어린이 도서관의 호랑이 담뱃대 멤버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 들려주고 원두막 지어준다. 이 어느 것도 기술, 시장, 소비오락의 신들과는 관계가 없다. 그곳 도서관장은 문익점 이야기를 위인전으로 읽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도서관 마당 텃밭에 목화씨를 심는다. 목화는 기적처럼 잎을 내고 잎사귀들은 여름 한 철을 지나면서 어엿이 자라 흰 꽃을 피운다. 자기네 손으로 심은 목화씨가 순을 내고 잎을 키우고 꽃망울 터뜨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 가장 훌륭한 일 하나를 했다는 듯이 즐겁고 행복하다. 때가 되면 아이들은 문익점처럼 붓대롱에 목화씨를 간직하리라. 내년 봄 그들은 그 붓대롱의 씨들을 땅에 심어 생명의 기적을, 성장의 느린 리듬을, 부활과 순환의 이치를 깨치리라. 아이들은 그렇게 자란다. 아니, 그렇게 자라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도 있다.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들이 “할머니, 부뚜막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그때 호랑이 담뱃대는 부뚜막 프로젝트에도 나서야 하나?

- 한겨레 2006년 6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