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재욱 - 경상수지 악화 조짐을 우려한다
<포럼> 경상수지 악화 조짐을 우려한다
-- 안재욱 (경희대 교수·경제학) --
지난 달 경상수지가 15억3000만달러의 대규모 적자를 나타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4월 이후 9년 만에 나타난 최대 적자다.
지난해 10월 이후 경상수지의 흑자폭이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 더니 올 들어 2월과 3월에 이어 3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하고 있 다. 한국은행은 경상수지 악화 요인으로 12월 결산 법인들이 외 국인 주주들에게 지급한 배당금을 들고 있지만, 그보다는 고유가 와 환율 하락의 충격이 가시화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올해 우리나라의 평균 원유 도입단가는 지난해 배럴당 50.5달러 보다 20% 정도 오른 61달러였다. 또한 지난해 연평균 1024원이었 던 환율이 올해 94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 영향으로 1~4월중 상 품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3억달러 이상 하 락한 71억8000만달러였다. 한편 해외여행과 유학, 연수 등의 증 가로 나타난 서비스 수지 적자는 올 들어 4월까지 63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적자규모가 23억달러 이상 증가했다.
경상수지는 경제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적자도 날 수 있고 흑자도 날 수 있다. 따라서 정상적인 경제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났다고 해서 좋아할 일도 아니고 또 적자가 났다고 해서 비관하면서 호 들갑 떨 일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 경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기업의 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와 전투적인 노조활동으로 기 업의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그로 인해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아 소득 감소로 인한 소비 감소로 내수가 극도로 침체돼 있는 상황 이다. 그나마 우리 경제는 수출에 의지해왔다. 여기에 수출까지 감소한다면 정부가 연초에 전망한 5% 성장은 요원한 이야기가 된 다.
사실 고유가와 환율 하락과 같은 외부요인은 우리가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가 수출 감소를 막기 위해 환율 방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환율을 방어하지 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화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환시채) 발 행을 통해 조성하는 외국환평형기금의 손실 규모가 2004년 10조2 205억원, 2005년 4조6357억원에 달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충격이 왔을 때 그것을 극복하면서 지속적인 성 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다. 경제의 시스템이 유연하 면 외부충격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외부충격에 위기를 맞는다.
이러한 점에서 매우 경직적인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 는 고유가와 환율하락이라는 외부충격에 의한 경상수지 악화가 우려된다. 고유가와 환율 하락은 기업에 영향을 미쳐 수익성 하 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05년 기업 경영분석 결과 ’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6.2%로 전 년(7.0%)에 비해 0.8%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지난 98년 이후 처음 으로 전년에 비해 떨어진 것이다.
장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수익 성 악화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일 자리가 줄게 되고 소비가 위축돼 경기가 내리막길로 더욱 치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 완화, 감세 등을 통해 국 가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유도하는 데 최우선을 둬야 함에도 불구 하고 정부는 하릴없이 부동산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 정부는 10· 29, 8·31, 3·30 등의 대책을 쏟아내도 집값이 떨어지기는커녕 오르기만 하자 연일 부동산 버블붕괴론을 제기하면서 국민을 불 안하게 만들고 있다.
과연 이 정부가 국민의 삶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인지 의 심스럽다.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의 “20년 후엔 지금 한국이 하는 모든 일을 중국이 대체할 것”이라고 한 경고가 정부 당국 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 문화일보 2006년 5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