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우석 - 소나무가 설 땅은 어디인가


동문기고 공우석 - 소나무가 설 땅은 어디인가

작성일 2006-09-16

[사이언스 리뷰]소나무가 설 땅은 어디인가

공우석 (지리76/ 31회, 모교 지리학과 교수)

산에는 화려한 꽃을 피우며 우리의 눈길을 끄는 식물들이 많지만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산을 지켜온 식물이 소나무이다. 산림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나무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여러 차례 선정되었다. 왜 우리 산에는 소나무가 많고,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좋아하며, 소나무의 미래는 어떠한가.
소나무가 너무 흔하기에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변에는 두 개의 바늘잎을 가진 소나무나 곰솔보다는 1960년대부터 헐벗은 산을 푸르게 하려는 조급한 마음에 생태적인 고려 없이 도입해 심은 바늘잎이 세 개인 리기다소나무 등 외래종이 많다. 소나무는 한반도에 자생하는 30여 종의 침엽수 가운데 러시아,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북부지방에서 제주도 해안까지 가장 널리 분포하는 나무이다.

소나무 하면 옛 그림에서 보는 작고 뒤틀린 못생긴 나무로 여기지만 사람의 손길이 드문 백두대간의 깊은 산에는 키가 20m를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는 햇빛이 많고 건조하며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므로 헐벗은 숲을 푸르게 하여 각종 식물의 성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나무속(屬) 나무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한 것은 1억년 전후의 중생대 백악기 때부터이다. 소나무는 꿋꿋한 생명력으로 6500만년 전부터 시작된 신생대의 여러 차례의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 땅의 터줏대감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삶을 같이한 나무로 선사시대부터 널리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산에 심던 조림 수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을 짓거나 배를 만드는 데 중요하여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는 금송(禁松)정책을 펴기도 했다. 유럽의 문화가 참나무 문화라면 우리나라는 소나무 문화권의 중심에 있다. 예전에는 아들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고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기도 했다.

요즘 잘 가꾸어진 대관령 솔숲은 테르펜과 같은 방향성 물질이 넘치는 삼림욕장으로 인기가 높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필요한 소나무를 공급하던 변산반도와 안면도의 소나무숲은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진 생태관광지이다. 소나무 뿌리에 나는 송이버섯은 백두대간 산촌 주민들의 귀한 소득원이다.

한때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소나무는 국토개발, 소나무재선충병, 산불과 수종 갱신 등으로 그 면적이 25% 정도로 줄었다. 특히 소나무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 때문에 수난을 겪고 있다. 솔수염하늘소가 솔잎의 수액을 빨아먹을 때 옮겨가는 재선충은 수분과 양분의 이동통로를 막아 소나무를 말라죽게 한다. 소나무재선충병은 특별한 치료약이 없고 솔수염하늘소의 천적도 없어 피해는 커지고 있다.

예전에도 소나무 숲은 송충이, 솔잎혹파리 등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88년 일본으로부터 부산을 거쳐 남부지방에 퍼지기 시작한 소나무재선충병은 최근에는 강원도 강릉에까지 번져 소나무와 곰솔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2000년에 1677ha였던 소나무재선충병 피해 면적은 2005년에 5111ha로 넓어져 53개 시·군·구까지 퍼졌다. 이처럼 소나무재선충병이 빠르게 퍼진 것은 사람들이 감염된 소나무를 목재나 조경용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남한의 소나무 숲에 많은 피해를 주었던 솔잎혹파리가 휴전선을 넘어 금강산의 소나무에도 큰 피해를 주어 남북한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방제를 한 적이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남한의 백두대간의 소나무 숲뿐만 아니라 북한에까지 확산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생태적 재앙이 될 것이므로 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아파트 단지, 공원과 골프장 등을 꾸미는 데 인기가 높은 우뚝 솟은 소나무는 어디에서 온 것이고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 세계일보 2006년 5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