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권영준 - '상속세 폐지론'의 허와 실
'상속세 폐지론'의 허와 실
--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
재벌의 경영권 세습과 관련한 상속세 폐지·완화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현대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 구속을 정점으로 따져 본 현대차 비리사건도 결국 불법 이외에는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상속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삼성에버랜드의 불법 전환사채 발행사건의 2심 재판을 앞두고 이건희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려는 움직임 또한 사실은 비합리적 상속세제 때문이라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그나마 한국 대표선수 역할을 잘 담당하는 재계 서열 1, 2위의 그룹총수들이 글로벌 기준으로 볼 때 터무니없이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범법자 아닌 범법자 취급을 억울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1조원 상당액의 세금을 떳떳하게 내고 합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는 신세계의 발표가 여타 그룹에부정적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시장경제체제를 기본질서로 삼고 있는 글로벌 국가들을 중심으로 상속과세의 강화를 통해 경제적 기회균등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각각 1972년, 77년, 92년에 상속과세를 폐지했고, 미국은 2011년부터 증여세만 존속시키고 유산세(遺産稅)는 폐지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차제에 상속세제에 대해 전면검토를 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하에서 일괄공제를 택하는 경우 상속세 면세점이 5억원이고 배우자가 있을 경우에는 10억원이기 때문에 서민은 물론 중산층에게도 거의 영향이 없다. 따라서 단지 재벌 오너들이 그들 자손들에게 승계하고자 하는 경영권(經營權)의 경우가 그들의 특별관심의 대상이다. 실제로 2004년도 국세통계연보에 의하면 우리의 경우 상속요인 발생 대상자들 중 오직 0.7%만이 상속세를 납부했다. 상속세 폐지라는 주장이 옳은 것인지 여부는 우리 경제사회에 대한 실사구시적 진단에 달려 있는 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문제가 많다.
첫째, 선진개방경제를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가 상속세제의 글로벌 추세를 따라야 한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으나, 상속세제의 글로벌 추세를 따르기 위해서는 경영권 승계의 글로벌 추세를 먼저 따라야 한다. 경영권이 무엇인가?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의사결정권한과 최종책임을 지는 것이 경영권이기 때문에 가족간의 승계이든지 타인간의 승계나 전문경영인의 영입이든 간에 글로벌 기업들은 반드시 시장에서의 성과(成果)를 통한 검증(檢證)과정을 거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면 우리 재벌기업들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핏줄이라는 연결줄 이외에 우리 재벌들이 경영권 승계에서 시장에서의 검증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그룹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반문해 보아야 한다. 이미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영실패로 인해 대기업이 붕괴될 때, 국민경제적 폐해가 얼마나 큰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선진국처럼 전문경영인에 의한 승계든 가족승계든 간에 시장에서의 경영성과를 통한 검증을 거친다는 경영권승계의 최우선 조건이 지배구조개선과 함께 지켜진다면, 우리의 상속세제의 글로벌 표준화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우리의 상속과세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재산형성과정의 불투명성과 탈세방지 미비 등의 세제상 제약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상속세 폐지는 시기상조다.
셋째, 앞에서 예시한 국가들도 상속에 대한 세금을 전면 폐지한 것이 아니라 양도소득세의 한 형태인 자본이득세로 합산하여 종합소득으로 과세하고 있는데, 주식양도에 따른 자본이득세제가 미비한 우리의 경우 현재로서는 상속세 폐지에 대한 대안이 부재한 상태인 것이다.
- 조선일보 2006년 5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