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서유경 - 정부와 NGO의 힘겨루기
[시사풍향계―서유경] 정부와 NGO의 힘겨루기
서유경(영어교육82/ 32회, 경희사이버대 교수·NGO학과)
최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건으로 정부와 시민단체들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7일 국정브리핑을 통해 같은 날 열린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제3차 민관공동위원회’에서 이 건과 관련하여 불법 폭력시위에 참가한 단체에 대해서는 정부보조금을 지원하지 않고 평화적인 단체에는 케이블 방송을 통한 공론의 장을 제공하겠으며,내달 말 정부-비정부기구(NGO)간에 ‘평화시위를 위한 사회적 협약’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곧 이어 이 결정이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보류되었다는 정정 보도가 나왔다.
이러한 혼선은 돈줄을 틀어쥐고 ‘NGO 길들이기’에 돌입하려는 정부의 의지와,그에 저항하는 시민단체 간의 힘겨루기 양상의 한 단면이다. 사실 정부의 보조금 중단 시사는 ‘한국 NGO 황금기의 종언’ 선언과 다름없다. 이는 물론 우리만의 현실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NGO의 영향력이 막강해지자 각국 정부가 이미 그들에게 훨씬 더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NGO 활동에 대한 실질적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러시아 의회는 작년 12월 “NGO가 국가 주권,독립성,영토주권,민족적 통일성과 독창성,문화유산과 국익 등에 위협이 될 경우 폐쇄조치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이번 무력 충돌사태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명숙 총리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을 직시하면,NGO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기구나 국민 대다수의 보편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소수의 이익을 대표하는 여타 이익집단과 같은 성격을 띤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NGO 활동에 대한 사전 규제나 엄격한 사후 평가에 대체로 소극적이었던 이유는,그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의 공익 증진에 복무하는 유익한 집단들이라는 원론적 합의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 NGO는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피어난 한국 민주주의의 꽃으로 인식되어 어느 누구도 감히 함부로 비판의 화살을 돌릴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년 우리 NGO들은 어느덧 성년에 접어들었다. 모름지기 성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때문에 과거 그들이 향유했던 우리 국민의 무비판적인 사랑과 이에 부응하는 정부의 전폭적 지원 정책이 더 이상 당연시될 수 없다. 불법시위에 시민의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는 여론은,이러한 변화된 상황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게다가 정부보조금 문제는 이미 한 차례 옹골찬 설전이 벌어졌던 사안이다. 2년 전 일부 언론이 총선연대 활동과 관련하여,정부지원금이 시민단체의 친정부 활동을 부추기며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민단체연대회의’ 측은 즉각 반박 성명으로 응수했다. 때마침 한 야당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시민단체를 ‘기생충’에 빗대자 동정 여론이 비등함으로써 NGO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행자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05년 정부는 1만937개 시민단체에 1750억원을 지원했다. 이러한 수치로 미루어보건대,정부보조금이 NGO들의 사활과 직결된 것임은 자명하다. 더욱이 우리 사회처럼 기부 풍토가 척박한 곳에서는 자발적인 개인 후원자를 확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보조금 통제 시사는 시민단체들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한 중대한 일격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일단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힘겨루기가 조정국면에 돌입했다. 이제 승패의 추이는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 국민일보 2006년 5월 22일 -